지난 연말 시작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으로 14일 현재 살처분된 소, 돼지의 숫자가 330만마리 닭, 오리 등의 숫자가 540만 마리를 넘어선 가운데 매몰지의 침출수로 인한 토양과 지하수 오염 등 2차 환경오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제역과 AI 확산 방지에만 급급하던 정부당국과 해당 지자체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매몰지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 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2차 환경오염에 노출
현재 구제역과 AI로 인한 매몰지는 전국적으로 4,000여 곳을 헤아린다. 그러나 매몰지의 상당수가 잘못된 위치선정, 지침을 위반한 부실매몰 등으로 2차 환경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북도와 환경부가 지난달 도내 매몰지 1,000여 곳의 입지적합성을 정밀조사한 결과, 89곳이 부실매몰지로 꼽혔는데 이중 61곳이 보강이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탈에 위치해 붕괴우려가 있는 곳이 23곳, 동물사체의 침출물로 인한 하천오염이 우려되는 곳이 16곳, 저지대에 위치했으나 충분한 배수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침수우려가 높은 곳이 16곳이었다. 붕괴와 침출수 유출우려가 모두 높은 곳도 6곳이었다. 한강상수원에 영향을 미치는 서울, 강원 지역의 매몰지 2,900여 곳 가운데 해당 지자체가 오염우려가 높은 곳으로 보고한 99곳에 대한 환경부의 조사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3일까지 조사된 60여 곳의 매몰지 가운데 26곳이 인접 하천으로 침출수가 유출되고, 매몰지 주변이 붕괴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매몰지 현장의 실태는 당국의 발표보다 더 우려가 된다.
매몰지 점검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돼지 1만1,000여 마리를 묻은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한 매몰지는 경사 20~30도의 비탈에 조성돼 있었다. 경기 이천시 설성면의 한 매몰지는 남한강으로 유입되는 지천과 거리가 2~3m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AI로 2004년 닭 1만 마리 이상을 묻었던 충남 천안시의 한 매몰지 중 한 곳은 고구마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U자형으로 묻어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가스매출관이 기준을 어기고 하늘을 향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박창근 시민환경연구소 소장(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매몰 가축들의 사체가 썩으면서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는데 이 오염은 진행속도는 느리지만 제거도 쉽지 않다”며 “이번 사태로 심각한 환경적 문제점이 드러난 매몰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매뉴얼은 무용지물
구제역과 AI 확산방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매몰방식에 대한 매뉴얼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매뉴얼이 있지만 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공무원들의 손이 부족해 그대로 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돼지 살처분에 동원됐던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매몰 당일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한 사람당 90마리씩의 돼지를 묻느라 지침을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었다”며 “비닐만 깔고 묻었는데 돼지가 발버둥쳐 비닐이 찢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매뉴얼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관련지침은 농림수산식품부의‘구제역긴급행동지침’과 환경부의‘가축매몰지 환경관리지침’2가지다. 두 매뉴얼 모두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유해 미생물에 대한 경고가 허술했다. 동물의 사체에서 나오는 살모넬라균, 캄필로박터균 등은 사람이 먹으면 장티푸스, 패혈증 등을 일으키는 균으로 주로 지하수로 오염된다는 점에서 매몰시 지하수관리가 중요한데 농림부의 매뉴얼에는 살처분장소를 ‘가급적 지하수를 오염시키지 않는 곳’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돼 있다. 환경부 매뉴얼도 마찬가지다. 이 매뉴얼의 토양미생물 분석항목에는 조직괴사를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속 퍼프리젠스균은 거론하고 있으나 파상풍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 테타니, 식중독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 보튤리듐은 제외돼 있었다. 탄저병을 일으키는 바실러스균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런 미생물들은 흙 속에서 포자상태로 존재하다가 기온이 올라가고 동물사체 같은 영양분을 만나면 활발하게 번식한다.
매몰지 확보 어려워
매몰지는 사람이나 가축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곳이 최우선 순위지만 임차농이 많아 토지주를 설득하기 어렵고 주민들의 반발도 심해 대체부지를 확보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정도 부실 매몰의 원인이 됐다. 경기도의 경우 도내 가축매몰지가 2,000곳을 넘어섰다. 소각방식도 대안으로 논의되지만 소각시설 설치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설치가 어렵고 이동식 소각시설도 현재로서는 가금류를 제외하고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태다. 김계훈 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 교수는 “구제역과 AI 발생은 이번으로만 그치지 않고 향후 상시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축산농가마다 토양, 지하수 오염가능성이 없는 매몰지를 미리 확보해두는 ‘사전 선정’의무를 부과하고, 소각시설이 멀지 않은 곳에만 축산업 허가를 내주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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