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은 없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해놓고 1년도 안돼 정리해고를 한 것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1심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에 따른 정당한 해고로 봤지만, 항소심은 이와 달리 판단해 정리해고된 17명을 구제했다. 1, 2심은 같은 회계자료를 보고 판단하면서도 회사의 경영상 위기 부분과 관련해 극명한 시각 차를 보였다.
서울고법 행정5부(부장 김문석)는 회사 인수 과정에서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합의서를 작성하고도 정리해고된 J사 근로자 17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합의서를 어기고 17명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한국주철관공업주식회사는 철강 제조회사 J사의 대주주인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로부터 주식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J사를 인수하면서 2007년 7월'회사 인수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특별단체교섭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5개월 후 정리해고 계획을 수립, 이듬해 5월 정리해고를 실시했다. 심각한 재정적 위기 등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을 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근로자들은 "매출이익은 계속 흑자이고, 적자 역시 외환차손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은 회계자료와 회계법인의 J사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J사는 2005년도부터 2008년까지 연간 27억원 내지 51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고, 현금 유동성에도 문제가 있는 등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과 인원을 줄일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2007년도 적자는 51억원, 이에 비해 2008년도 당기 순손실은 그 2분의 1이고, 적자 폭도 대폭 줄었다"며 "합의서 체결 당시에 비해 급격한 매출 감소가 일어났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이어 "2008년까지는 국내 강관 가격이 올라 강관업계가 사상 최대의 매출실적을 올리고 있었는데도 합의서 작성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정리해고를 단행했다"고 지적했다.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무시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1, 2심의 이런 상반된 판결에 대해 한 판사는 "회계자료만 보고는 어떤 회사가 재무적, 경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없듯이 경영적 판단이라는 것도 모호한 개념이라 재판부 간 다른 입장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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