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의 폭설로 눈 속에 파묻힌 강릉시 주문진읍 삼교리는 13일 현재 마을 형체가 사라졌다. 쌓인 눈 속으로 이웃집을 간신히 연결하는 10m 남짓한 ‘토끼 길’이 사람 사는 마을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을 상징하는 나지막한 삼형제봉도 눈으로 뒤덮여 구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웬만한 눈에도 끄덕하지 않았던 이 마을 주민들도 이번 폭설에는 혀를 내둘렀다. 이장 김동욱(65)씨는 “눈이 습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 하루 종일 제설작업을 해도 길을 10m 이상 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피해 눈덩이
100년 만의 기록적인 눈 폭탄을 맞은 강원 영동지역은 교통이 마비되고 건물이 무너지는 등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특히 기상청의 부정확한 예보와 당국의 미숙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폭설 예보에도 불구하고 월동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 무리하게 차량을 운행한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도 또 드러났다.
13일 밤 현재 삼교리를 비롯해 강릉 연곡면 대기3리와 삼산리 등 9개 마을 320여명의 주민들이 사흘째 고립돼 있다. 이들은 이들 지역에는 15일 오후에나 장비와 인력이 투입될 전망이다.
재산피해도 컸다. 강릉과 동해 삼척에서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 180동이 무너져 20억원어치의 파프리카와 토마토가 피해를 입었다.
또 삼척 중앙시장에서는 비가림 시설이 내려 앉아 인근 양곡창고와 상가 10여 곳을 덮쳤다. 삼척 근덕면의 농가에서는 닭 5만2,000마리가 폐사했고, 강릉 강동면에서는 돼지를 340여 마리를 키우던 축사 2개 동이 붕괴됐다.
이번 눈으로 강릉 남항진항 삼척 호산항 등지에서 24척의 배가 침몰했지만, 인양에 필요한 중장비와 잠수부들을 구하지 못해 어민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부정확한 예보
적설량 예측 실패와 관계당국의 미숙한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상청은 이번에도 눈 폭탄의 강도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 기상청은 지난 9일 이번 눈을 처음 예보할 때 적설량을 최대 15㎝로 예상했다. 10일 오전에는 ‘12일까지 10~20㎝, 많은 곳은 30㎝’로 바뀌더니, 11일 오전에는 ‘20~40㎝, 많은 곳 60㎝’로 예상 적설량을 발표했다. 적설량을 늘려 잡았지만 1m가 넘는 폭설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강원도재난대책본부 관계자는 “기상청의 예보를 토대로 최대 30㎝가량의 눈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차량 및 제설대책을 세웠다”며 “그러나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 적지 않게 당황한 것이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현장에 즉시 투입될 수 있는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경북에서 강원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는 제설 및 견인장비가 제때 투입되지 못해 군부대 인력만으로 차량을 이동시켜야 했다. 일부 차량은 월동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 무리하게 운행하다 미끄러져 다른 차들과 뒤엉키면서 제설 차량의 진입을 어렵게 했다.
때문에 7번 국도는 30시간이나 불통되다 13일 오전 5시께 가까스로 양방향 소통이 재개됐으나 국도상에 고립된 시외버스 승객과 운전자 200여명은 밤새 추위와 배고픔에 떨어야 했다. 일부 운전자는 “폭설로 교통마비가 예상됐음에도 당국이 차량을 인근 도로로 우회시키지 못해 이번 일이 벌어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더욱이 한 대의 장비가 아쉬운 상황에서 강원도는 춘천의 도청 주차장에 최신 제설차량을 방치해 놓아 눈총을 받기도 했다.
제설 및 복구
영동지역 자치단체와 군 당국은 제설차 및 중장비 1,600여 대와 공무원과 군인 4만여 명을 동원해 제설 및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도는 특히 2018 동계올림픽 실사단이 방문할 구간에 100여대의 장비와 600여명의 인력을 우선 투입해 제설 작업을 실시했다.
군은 특수수색대원과 헬기를 동원해 삼척시 근덕면 신흥마을 등 고립된 마을의 진입로를 확보하고 생필품을 전달했다.
그러나 워낙 눈이 많이 쌓인 데다 영하의 날씨 속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제설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릉=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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