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기업은 시공능력 43위의 중견 건설사. 2008년 효성그룹에 인수됐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부실로 적자는 매년 늘어갔다. 2,000억원에 달하는 모그룹 지원에도 불구, 자력회생은 어려워졌고 결국 지난 11일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하지만 진흥기업의 워크아웃은 사실상 힘든 상태. 근거법률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지난 해말 종료됨에 따라 신속한 절차진행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워크아웃을 밟으려면 이제 60여개 채권금융기관 모두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게 채권단측 설명이다.
도대체 기촉법이 뭐길래, 작년 말을 끝으로 사라지게 된 것일까. 다시 살리면 안되는 것일까. 이번 진흥기업 사태를 계기로 기촉법 부활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기촉법 폐지 후유증
지난 10여년간 워크아웃 방식에 의한 기업구조조정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촉법 덕분. 기촉법상 워크아웃은 채권단의 75%(채권액 기준)만 동의하면 가능하기 때문에, 채권액이 많은 은행들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기촉법 자체가 종료됐기 때문에, 워크아웃은 채권단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100% 동의를 받는다는 것 더구나 제2금융권에서 만장치 동의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워크아웃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게 금융권 설명이다.
따라서 금융당국과 금융권에선 기촉법이 다시 부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촉법이 살아나지 않으면, 부실기업들로선 신속한 워크아웃 대신 절차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정관리로 가야 하므로 회생확률도 뚝 떨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촉법은 질긴 생명력을 발휘해왔다. 2001년 한시법으로 처음 제정돼 2005년말까지 운용되어오다 폐지됐지만,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07년 다시 부활했다. 작년 말 일몰을 앞두고서도 3년 정도 시한을 연장하는 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추진됐으나, 12월 예산안 날치기 파동에 따른 국회 파행으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금융위는 2월 임시국회에서 기촉법을 되살리는 법안을 제출한다는 방침. 한나라당도 법안처리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반발
문제는 법조계의 반발이다. 법조계는 기촉법에 기업과 일부 채권금융기관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요소가 있다고 본다.
우선 기업 경영진과 채권단은 모두 이해당사자인데, 워크아웃은 채권단 일방이 주도하므로 기업의 경영 자율권은 심한 간섭을 받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채권단이 주도하는 워크아웃을 개시했다가 결국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한 모 건설사 관계자는 "채권단이 자산 매각과 단기채권 회수에만 몰두하고 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차라리 바로 법정관리로 가는 게 나을 뻔 했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주채권은행이 워크아웃을 주도함으로써 2금융권 등 다른 채권 금융기관은 채권을 회수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법 적용이 국내에 한정돼 해외 채권기관의 회수는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 요소다. 한 저축은행관계자는 "채권액 상위 75%만 동의하면 워크아웃이 성사되는데 결국 나머지 25%는 목소리도 못 내고 채권만 동결되는 권리침해가 생긴다"며 "기촉법과 워크아웃은 은행에 의한, 은행을 위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법원이 주도하는 통합도산법에 근거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의 경우 법원이라는 제3자가 금융채권자와 상거래채권자, 기업 등 이해당사자 모두의 이해관계를 살피고 중재한다는 차이가 있다. 법조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실기업 문제는 기촉법(워크아웃) 보다는 통합도산법(법정관리)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기촉법이 애초 한시법으로 운용됐던 것도, 이런 문제점 때문이다. 금융위도 이번에제출할 기촉법에는 워크아웃 기간 중 기업에 조정신청권을 부여하는 등 법조계 지적을 일부 수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법에 대한 법조계의 불신은 여전하다. 때문에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소관상임위인 정무위를 통과하더라도, 법조계 시각을 대변하는 법사위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