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민혁명은 지금까지의 여느 시민 혁명과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시위의 구심점이 된 정치 지도자 한 명 없이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로 대통령 사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다.
이집트 혁명에 이름 붙여진 '로제타 혁명' '코샤리 혁명'등의 명칭은 이처럼 이름없는 사람들로부터, 하층민에서부터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이번 혁명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로제타 혁명'이라는 명칭은 이집트에서 처음 발견돼 고대 상형문자 해독의 길을 열었던 로제타스톤처럼 이번 이집트 시위가 지도자 없는 새로운 혁명의 길을 열었다는 의미로 쓰인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처음 사용했다. 이집트의 경우,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부각됐지만 시위가 본격화한 뒤 귀국해 오히려 시위대를 뒤따르는 형태였다.
'코샤리(Koshary)'는 이집트 서민층이 즐겨먹는 전통음식으로, 서민들이 이번 혁명의 주체였음을 뜻한다. 코샤리는 콩, 쌀, 옥수수, 양파, 마카로니를 섞어서 삶은 뒤 토마토소스를 뿌려서 만드는데, 모두 서민들이 구할 수 있는 값싼 재료들이다. 카이로 도심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대는 바닥에 앉아 값싼 코샤리와 전통 빵인 아이시를 먹으며 무바라크의 퇴진운동을 벌였다. 8,000만명의 인구 중 40%가 하루 수입 2달러에 못 미치는 이집트 국민들에게 코샤리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시위대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을 먹는다"고 이집트 국영TV가 보도했을 때 시위대가 크게 분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집트에서 KFC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고소득층뿐이라고 한다. 코샤리와 함께 시위대가 동고동락했던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가 됐다.
새로운 혁명의 길이 가능해진 것은 인터넷 발달에 따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이 컸다. 이집트 혁명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시위를 촉발시킨 반정부 페이스북 사이트 운영자이자 구글의 중동ㆍ북아프리카 마케팅 담당 임원 와엘 고님(30)이었다. 그가 감금됐다 12일만에 풀려나 흘린 눈물은 이집트 시민들을 다시 뭉치게 했다. 이집트 혁명은 지도자가 혁명을 이끈 것이 아니라, 혁명과정에서 풀뿌리 지도자가 나오는 형태였다.
지난달 25일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키는데 기여했던 4월 6일 청년운동의 아샤르크 알 아우사트(26ㆍ여ㆍ카이로 대학)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목소리와 이미지를 담은 비디오 파일을 만들어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인터넷에 퍼뜨렸고 그 전달 속도는 우리조차도 놀라울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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