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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 첫 장편소설 '일곱개의 고양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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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 첫 장편소설 '일곱개의 고양이 눈'

입력
2011.02.1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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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미로를 조망케 하는 이카로스의 날개 따위는 없다. 파편화한 미로의 의미를 꿰어 주는 아리아드네의 실도 없다. 단지 미로 속을 헤매는 롤러코스트만 있을 뿐. 해법은 책을 덮거나 미로를 즐기거나.

최제훈(38)씨의 첫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발행)은 미스터리 복수극 공포 해프닝 환상 등이 쉴새 없이 엎치락 뒤치락거리는 이야기의 이야기, 메타 픽션이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 이야기 옆에 이야기, 이야기 너머 이야기가 겹쳐지는 이 기묘한 건축물엔 그러나 설계도가 애초부터 없다. 핵심 기둥인 '번역 속 살인' '쌍둥이 남매의 비극' '간질 환자의 환상' 등 몇 가지 모티브가 현란하게 반복 변주 반전되는 자유분방한 이야기의 변주곡이다. 지난해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에서 보여 줬던, 서사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이야기 연주 솜씨가 더욱 현란해져, 아찔하면서 일견 위태롭기까지 하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은 각각 독립된 네 편의 중편이 모자이크처럼 얽혀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픽스업' 장르 소설. 지난해 계간지 자음과모음에 1년간 연재됐다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첫머리에 놓인 '여섯 번째 꿈'은 일종의 낚시 떡밥 같은 중편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고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를 연상케 하는,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일본식 공포가 섞인 전형적 추리물. 본격적 이야기는 사실 그 다음부터다. 첫 편에 살짝 언급됐던 인물 사건 소재 등이 두 번째 편부터 다양하게 변주돼 증식된다.

첫 편에서 번역자 연우가 번역 과정에서 등장인물을 몰래 죽였다고 언급한 소설'복수의 공식'이 두 번째 편이다.'복수의 공식'은 강도의 침입으로 쌍둥이 여동생이 자살하며 삶이 파괴된 쌍둥이 오빠의 복수, 탄탄대로를 걷다 길거리 건달에게 받은 모욕으로 인생이 망가진 법대생의 복수, 날 때부터 재수 없었던 PC방 사장의 불운 해프닝 등 다섯 가지 이야기가 미묘하게 어긋나면서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를 문다. 각자의 시각에 따라 동일 사건이 조금씩 달리 진술되면서 진실도 모호해지는 것이다.

셋째 편 'π'는 <천일야화> 속 세헤라자드처럼 신비의 여인이 M이라는 번역자에게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하루라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안경사 자살의 미스터리를 캐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매일 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다 종내 현실과 환상의 경계마저 허물어진다. 여기에 바로 이 소설의 주제의식이 번뜩인다. "끊임없이 새로운 환각을 만들어 냈다가 해체하면서 아직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거죠. 당신에게 안주는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266쪽). 이야기의 주인공이 폐광 속에서 생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 끊임없는 이야기의 환상 때문이었듯이, 우리 역시도 이야기가 멈추는 순간 삶이 끝난다는 얘기에 다름없다.

이런 메시지엔 모든 이야기는 '재현'이 아니라 '환상'에 기반하며, 우리 삶이 본질적으로 '폐광 속 삶'이라는 탈근대적 허무주의가 깔려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온 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로 진로를 바꿔 2007년 서른 넷에 등단한 최씨가 좋아하는 사상가와 작가로 꼽은 이는 니체와 보르헤스. 탈근대 사상과 문학의 선구자들인 이들의 영향력을 이번 소설에서 유감없이 느낄 수 있다. 다소간의 우려라면 이런 류의 글쓰기가 사회적 맥락을 놓쳤을 때 자칫 유희로만 그쳐 작가로서 단명할 수 있다는 점일 테다.

그는 다음 번 작품은 스타일을 완전히 바꿀 계획이라고 했다. 등장인물을 갖고 놀았던 두 작품(작가는 "인물이 저를 갖고 놀았다"고 했다)과는 달리 인물의 개성을 살려 전통적 소설에 가깝게 쓰겠다는 것이다. "최제훈 하면 이런 식으로 쓰겠지라는 고정관념을 주고 싶지 않다. 저 스스로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다양한 작품을 써 보고 싶다." 물론 스타일을 바꾼다 해도 기발한 이야기와 구성의 '최제훈 표'는 여전히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속에 진중한 작가 의식과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 낼 수 있을지, 그리하여 이야기의 유쾌한 해체를 넘어서 장대한 스케일의 장편소설을 재구축할 수 있을지, 이 작가의 행로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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