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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판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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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판근 프로젝트

입력
2011.02.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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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 칼럼을 다 쓰고 밤늦게 귀가해 TV를 켰다. 교육방송에서 '이판근 프로젝트'라는 재즈 밴드의 공연 실황을 우연히 보았다. 칼럼 주제를 바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방송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판근씨는 재즈음악계의 대부로 존경 받는 작곡가요 이론가이다. 그가 딸과 함께 객석에서 감회 어린 표정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재즈는 아니지만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나 역시 그의 제자로 3년 가까이 음악이론을 배웠다. 종로에서 158번 버스를 타고 기자촌 종점까지 가는 동안 늘 마음이 무거웠다. 탁상 가운데 악보를 펴고 마주 앉아 진행하는 레슨에서 거꾸로 보이는 악보의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 나는 악보를 바로 보면서도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숙제를 아예 못한 날은 기자촌 쪽방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며 한숨만 쉰 날이 허다했다.

그는 재즈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순도 100%의 삶을 살았다. 작은 문방구에서 나오는 수입과 레슨비로 생활하며 자신이 만든 수 백곡의 음악은 음반으로 발표하지 않고 고스란히 쌓아 두었다. 돈과 명예를 좇지 않고 평생을 한가지에만 몰두하며 살아 온 힘은 재즈 음악의 마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활에 쫓겨 찾아 뵙지 못한 지 20년이 다되어 작년 제천 국제음악영화제에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한국 재즈 1세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가 경쟁 부문에 초청이 되었고 재즈 1세대의 개막식 연주가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었던 한국 재즈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기자촌 쪽방은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그의 악보들이 실력파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제자의 한 명으로서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홀로 큰 경지를 이룩한 이들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사라져 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마음 속으로 선생님의 음악과 업적이 이대로 묻혀질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자기를 챙기는 일만으로 바쁜 세상에서 어른을 공경하고 업적을 바로 알리는 일에는 인색할 따름이다. 귀감은 씨앗이 되어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를 통해 후배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현실로 인식하며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정진할 수 있다. 귀감은 뿌리를 중시하고 본보기를 세우려는 후배들의 존경과 노력이 어울려 만들어진다. 음악을 떠나서 잊혀질 뻔한 가치를 복원하여 귀감을 세운다는 의미만으로도 '이판근 프로젝트'는 문화적 가치가 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대중음악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시장의 크고 작음을 떠나 진정한 마니아들에 의해 굳건하게 유지될 때 장르간의 교섭으로 음악은 새로워 진다. 돈이 되지 않는 장르의 음악가들이 생계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는 건 혼을 뺏기는 일과 같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의 취향을 기자촌 쪽방에서 굳건하게 지켜 온 이판근 선생의 인생은 음악인들의 귀감으로 돈과 명예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재즈로 음악적 훈련을 쌓은 음악인들은 다른 음악 장르에 스며들어 대중음악 전체를 발전시키는 힘이 있다.

재즈 음악이 음악의 전 분야에서 탁월한 음악가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은 이판근씨와 재즈 1세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판근 프로젝트'를 보며 세상은 바르고 한국 재즈계의 혼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조성우 영화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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