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의 사람들/한나 아렌트 지음ㆍ홍원표 옮김/
인간사랑 발행ㆍ457쪽ㆍ2만5,000원
한나 아렌트(1906~75)는 독일 함부르크 자유시가 주는 레싱상 수상(1959) 강연에서 독일 근대희곡의 아버지로 꼽히는 고트홀트 레싱(1729~81)이 견지한 독립적ㆍ자율적 사유의 가치를 힘써 부각시킨다.
“레싱의 위대성은 인간 세계 내부에서 유일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적 통찰에 있을 뿐만 아니라 유일한 진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기뻐하고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이들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가 계속될 것임을 즐긴 데 있다.”레싱의 독립적 사유란 선험적 진리나 통념에 순응하지 않는, 끊임없는 사유와 대화를 의미하는데 아렌트는 저 말 앞에 레싱의 사유는 진리를 향한 탐구가 아니라며 “사유 과정의 결과인 모든 진리는 필연적으로 사유의 이동을 중단시키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아렌트는 레싱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일관되게 추구한 사유의 자유, 나아가 자유 그 자체를 옹호했다. “그는 추론이나 궤변 또는 강제적 논증으로 사유를 지배하려는 사람들의 폭정이 정통파 학설보다 자유에 훨씬 더 위험스럽다고 생각했다”고 할 때의 ‘그’는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의 저자, 아렌트 자신이기도 했다. 예루살렘의> 전체주의의>
이 책은 아렌트가 1955~68년 발표한 10명의 인물에 대한 논문과 에세이, 연설문 등으로 구성됐다. 레싱을 제외한 나머지_ 로자 룩셈부르크, 칼 야스퍼스, 발터 벤야민, 베르톨트 브레히트, 교황 요한 23세 등-는 모두 20세기의 인물들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한데 묶인 까닭은 아렌트가 본 바, 이들은 이 시대의 어둠을 각자의 영역에서 밝히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어둠’은 지난 세기 공적 영역에서 자행된 전쟁이나 권위주의, 압제가 아니라, 공적 불의가 대변자들의 교묘한 은폐와 정당화에 의해 보이지 않게 가려졌다는 의미에서의 어둠이다. 그리고 그 어둠은 지금도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아렌트는 공적 영역이 신뢰성의 빛을 상실한 시대에 정치적 사유와 개입(대화)을 통해 빛을 주고자 했던 이들의 삶을 다양한 맥락에서 들려 줌으로써 새로운 양상의_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_ 이 어두운 시대에 귀한 빛을 선물하고 있다. 다만 설명보다는 함축과 상징에 기운 아렌트 문장의 탄탄한 개성은 에세이나 연설문이라고 해서 눅지는 않아, 제대로 읽으려면 공은 좀 들여야 할 듯하다. 이런 문장이 그 예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우리는 어떠한 조명을 기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조명은 이론이나 개념에서 나타난다기보다 일부 사람들이 거의 모든 상황에서 밝힐, 지구상에 그들에게 부여된 시간을 넘어서 비칠 불확실하고, 희미하며, 때로는 약하게 보이는 빛으로부터 나온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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