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철학으로 치료한다/이광래 등 지음/지와사랑 발행ㆍ394쪽ㆍ1만5,000원
철학이라고 하면 일단 이해하기 어려운 수사(修辭)로 가득 찬 이론을 떠올리며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철학으로 우울증 슬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강원대 철학과의 철학치료팀을 이끌고 있는 저자들은 우선 우울증과 같은 증상이 마음의 병이 아닌 뇌 질환으로 간주되고 있는 현실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국정신의학협회가 만드는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매뉴얼(DSM)'이 이 같은 현실을 만든 주범이라고 한다. 1952년 이 매뉴얼에 오른 병명이 106종이었는데 차츰 늘어나 2000년에는 365종으로 늘어났다.
이 매뉴얼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수줍음과 같은 내향성까지도 내향적 인격 장애라는 이름의 정신병으로 올라 있다. 이것이 정말 병이라면 미국 인구의 절반이 정신질환자가 된다.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우울증 약 같은 약물치료라는 상식이 잘못됐다는 설명이 맞다.
저자들은 정신과 의사들과 제약 업체의 커넥션 등 이 같은 현실을 초래하게 배경을 언급하면서 프로작 같은 일시적이고 중독적인 약보다는 근원적 치료 방법으로서 철학을 이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
철학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철학의 핵심인 반성 자체가 치료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자기 인식 요구나 유학에서 인성의 올바른 형성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수양론, 불교에서 중생들의 고뇌를 없애고 깨달음에 이르는 실천법인 팔정도(八正道)가 모두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철학적 반성은 무지의 자각을 통해 마음의 병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가령 소크라테스는 자기 성찰과 반성을 통해 자신이 빠져 있는 정신적 병, 즉 도덕적 빈곤과 맹목을 깨닫게 했다. 마찬가지로 예기치 못한 인생의 실패나 상실에서 오는 절망감이나 좌절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힘은 악물이 아니라 처절한 자기 반성의 힘, 즉 철학의 힘뿐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철학 치료의 구체적 방법은 소크라테스처럼 대화하는 것이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개인이 반성적 사색으로 스스로 문제 해결에 이르도록 끝까지 대화하는 것이 철학치료자의 역할이다. 물리적, 화학적 수단으로 신체적 고통을 없애는 것이 치료(cure)라면 정신이 정신에 영향을 주어 정신적 고뇌를 제거하는 것은 치유(care)라고 한다.
자살감염증 등으로 인해 정신최빈국으로 지목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철학의 기능이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지(知)의 대량생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데 있다는 저자들의 생각이 반갑다.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상아탑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 있었는데 오늘날 철학을 하는 이들이 과연 선인들의 뒤를 좇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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