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전쟁을 겪은 뒤 1960~70년대를 궁핍 속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던 우리에게 적당한 비만과 볼록한 윗배는 부자의 상징이오, 선망의 대상이었다. 배가 나온 것만으로도 서울시내 다방이나 유흥음식점에서는 '사장 대접'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살찐 배불뚝이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4배 이상 고혈압이나, 당뇨병, 뇌졸중, 심장병 같은 치명적인 병에 잘 걸리고, 그 병으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배불뚝이가 이런 질병의 뿌리가 되는 대사증후군의 전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가난한 시대를 지나 80년대 중반 이후의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 과음과 과식에 따른 열량과잉과 운동부족으로 이제는 비만이 건강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커다란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의 인구 10명 중 3명이 대사증후군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대사증후군 관련 질환으로 국내 병ㆍ의원에서 1년에 한 번 이상 진료를 받은 사람이 400만명에 이르고, 진료비도 6,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대사증후군은 고혈압, 복부비만, 고지혈증,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 여러 건강위험요인이 한 사람에게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의학계에서는 허리둘레가 남자는 85㎝, 여자는 80㎝ 이상이고, 중성지방이 150㎎/㎗이상, 고밀도(HDL) 콜레스테롤이 남자 40㎎/㎗, 여자 50㎎/㎗ 이하, 공복 혈당이 100㎎/㎗이상, 수축기혈압이 130㎜/Hg, 이완기 혈압이 85㎜/Hg 이상인 경우 등 이 5가지 가운데 3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대사증후군으로 진단한다. 특히 이 가운데에서도 내장지방에 의해 윗배가 볼록 나오고 허리둘레가 굵어지는 복부비만을 가장 위험한 요인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민건강증진과 의료비절감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대사증후군을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가 보험조합의 역할을 담당하므로 진료비절감을 위해 경쟁적으로 대사증후군 예방활동을 전개해 왔는데, 지역 관공서와 기업들에 대해 허리둘레가 일정수준을 넘는 직원이 있으면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가 하면, 이러한 직원에 대해서는 고열량 식사제한, 운동처방 등 집중적인 관리를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훈련을 받은 전문가를 배치해 대사증후군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연간 1억엔 정도를 투자한 결과, 10억엔 정도의 의료비 절감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뱃살과의 전쟁'을 벌여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몇몇 사람들이 모여 '한국대사증후군포럼'을 발족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국민 뱃살 줄이기 운동을 시작으로 대사증후군 퇴치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한다. 정부와 국민의 각별한 관심을 촉구한다.
허갑범 연세대명예교수ㆍ허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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