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주 오랫동안 내게 입을 맞추고 있었을 때도, 아빠 호흡이 이상해져 갈 때도, 난 꿈을 꾼 거야. 그 날 밤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우리 아버지' 때문에 그날 밤 내가 깨어났을 때도, 난 꿈을 꾼 거지." 이제 15년 뒤. 성인이 다 됐지만 딸 에스텔은 그 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극단 프랑코포니의 연극 '유리알 눈'은 일견 충격적이다. 더러 외설적이기까지 하다. 무대 위에서 발생하는 최대의 사건은 친족성폭행. 극단측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연이 불가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로다.
딸은 정상적으로 클 수 없었다. 남편에게 부인이 토해내는 말은 이 '사건'의 현실적 파장을 명확히 한다. "당신 딸이라구? 그토록 그 애에게 고통을 주고, 그토록 그 앨 망가뜨렸다면, 정신 병원에 있다는 그 애에 대한 추억만이라도 당신은 존중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에스텔은 미쳤고 벙어리라구! "
그러나 더 들여다 본다면 이 연극은 현대인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기성 관념과 위선의 더께를 벗겨내는 데 무게를 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문제의 근저, 핵심이 가족간의 소통이라 보기 때문이다. 인형 제작 분야에서 최고의 장인으로 인정받은 아버지가 영예의 회고전을 개최하기 하루 전, 그를 찾아 온 미모의 여인 에스텔로부터 진실은 폭로된다. 성형 수술로 거듭난 그녀를 아버지는 알아보지 못 했던 것.
극단 대표이자 번역을 맡은 임혜경 숙명여대 불문과 교수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눈뜨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 가족 간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러주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무대는 특히 피해자가 평생 회복 불능의 상처를 안고 살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중시한다"며 "성 문제가 만연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접근을 도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무대는 인물들의 심리적 길항과 궤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버지, 어머니, 큰딸, 작은딸 등을 연기하는 네 명의 출연자는 동등한 감정의 폭과 깊이로 인물들을 표현해야 한다. 임교수가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 유학 시절 이래 연극 동지로 지내온 외국어대 불어과 카티 라팽 교수의 연출로 만들어지는 무대다. 2009년 연출한 '고아 뮤즈들' 등으로 국내 연극팬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그의 해석도 기대된다.
희곡의 도입부, 원작자는 안톤 체홉이 했던 말을 인용해 뒀다. "예술가는 자신이 만드는 등장 인물의 행동과 말을 재판하는 판사가 되지 말고, 단지 누구에게도 편중되지 않는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극은 보다 냉철한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 미셸 마크 부사르 작. 이상구, 박현미, 김정은, 이서림 출연. 23일~3월 13일 산울림소극장. (02)334-5915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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