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올해 점 보러 온 사람은 기자가 처음이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올해 점 보러 온 사람은 기자가 처음이야"

입력
2011.02.07 17:32
0 0

신년운세… 미아리 점성촌 가봤더니立春 대목도 없이 70여곳 개점휴업 상태사주카페 등에 밀리며 호시절은 옛날 얘기"시각장애 역술인 많아 유명인 꽤 왔었는데…"

사주학(四柱學)에서는 입춘이 새해다. 신년운세를 보는 발걸음도 입춘 이후 몰린다. 올해 입춘은 4일, 호시절 '점집 하면 미아리'란 공식을 만들었던 전국 최대규모의 점성촌인 서울 성북구 동선동을 찾았다. 1960년대 후반에 형성돼 70곳이 넘는 점집이 늘어서있지만 남 팔자는 고사하고 쇠락해가는 자신의 운세를 점쳐야 할 운명에 처했다.

'○○철학관' 'xx운명감정원' '△△예언가' '◇◇역학사'….

지하철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길음동 쪽 미아리고개 왼편에는 갖가지 간판을 단 점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100m가 채 안 되는 골목을 따라 늘어선 점집만 19개. 영업중임을 알리기 위해 대문 한쪽을 열어 젖혀 놓거나 작은 벽돌로 현관문을 괴어뒀지만 손님 신발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만 간간이 골목을 지나다녔다.

이름깨나 날린다는 ○○○역술원에 갔다. 쪽진 머리에 회색 계량한복을 입은 70대 초반의 이모씨가 무료한 듯 시각장애인용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신년 사주를 보러 왔다고 하자 반색하며 생년월일과 성(姓)을 물었다. 점자로 된 (조선 정조 때 만든 역서)을 손으로 더듬은 후, 계란만한 타원형 은빛 구슬을 흔들며 중얼거렸다.

"자축인묘진사오미…." 육효(점괘의 여섯 가지 획수)를 흔들어 점괘를 만드는 거라고 했다. "2, 3월에 재수운이 열리고, 4~6월에는 삼각관계에 빠질 수 있고…." 줄줄이 월별 사주를 읊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다. "정말 좋은 사주인데, 상문(喪門ㆍ상가에 갔다 생기는 부정)이 있네. 부정을 풀려면 격문은 120만원, 부적은 50만원이야." 미신과 상술의 냄새가 확 끼쳐왔다.

그러나 미아리 점성촌 사람들은 역학을 근거로 점을 본다고 주장한다. 보통 '점쟁이'라 통칭해 부르지만 역학 사주학 등을 공부해 점을 보는 역술인과 신 내림을 받고 점을 보는 무속인은 다르고, 미아리 점성촌엔 역술인, 특히 시각장애 역술인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이는 점성촌 역사와도 무관치 않다. 6ㆍ25전쟁 이전엔 종로3가, 후엔 남산에 모여 살던 시각장애 역술인들은 남산 재개발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러다 1966년 미아리고개에 터를 잡은 시각장애 역술인 이도병(70)씨의 점집이 잘 나간다는 소문에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디 시각장애인들은 안마 침술 역술 등 직업선택의 폭이 좁고 이동이 불편해 비슷한 처지끼리 모여 돕고 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호황을 누렸던 80년대에는 점집만 100개가 넘었다. 역술인들이 앞을 보지 못하니 고객들 입장에선 자신의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한 역술인은 "정치인 등 유명인사들도 많이들 찾았다"고 귀띔했다.

이젠 다 옛날 얘기다. 근처 부동산에서 비교적 잘 되는 집이라고 일러준 해당화여성점성가의 민귀만(64)씨는 "양력으로 2011년 들어서는 손님이 한 명도 안 왔다. 아가씨(기자)가 올해 처음 우리 집 문턱을 넘은 사람이다. 철학원 연 지 40년짼데 이렇게 손님이 없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명 손님구경을 하면 다행이라는 것. 민씨는 "눈이 성하면 파지라도 주우러 다니련만 다른 일은 엄두도 못 내고 간판만 걸어놓은 채 개점 휴업상태인 곳이 적지 않다"고 푸념했다.

4평 남짓한 전세 단칸방이 살림집이자 철학원인 진화철학관 시각장애 부부 주성훈(67) 김연예(68)씨는 "하루 한 명 정도 점을 보러 와요. 형편이 어려워 음료수도 한 잔 못 줘서 어쩌냐"고 연신 미안해했다.

점에 대한 세상인식이 바뀌었으니 뾰족한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초부터 역학을 배우는 비장애인들이 늘고, 사주카페라는 신종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니 평생 한 곳에서 구식으로 점을 봐왔던 이들에겐 감당이 안 될 법도 하다. 인근 부동산 사장은 "'미아리 텍사스'가 사라지면서 돈암동과 미아삼거리를 잇는 상권이 쇠퇴, 유동인구가 줄어든 것도 한몫 했다"고 나름의 분석을 곁들였다.

어쩌면 고액의 격문과 부적을 권유하는 건 나름의 자구책일지 모르겠다. ○○○역술원의 이씨는 "오늘(5일)은 해와 날이 모두 토끼인 신묘년 신묘일로 부적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좋다는 날, 점성촌의 하루는 조용하고 쇠잔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