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육·일자리를 복지 우선순위로… 국가의 미래에 투자하라"
북유럽처럼 전체 예산의 절반 가량을 복지 지출에 쏟아 부을 수 없다면 제약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럼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어느 한 곳 중요하지 않은 데가 없지만, "미래에 투자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선택이다. 아동에 대한 투자가 바로 그것인데, 저출산을 해결하고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 기획한 '대한민국, 복지의 길을 묻다' 릴레이 토론회에서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원 배분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뤄진 상태인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을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면 복지 지출의 우선 순위를 보육과 교육, 그리고 일자리에 두라고 조언했다.
양극화로 계층별 가치관까지 달라져
사회(보건사회연구원 강신욱 연구위원)= 우리사회에서 복지 지출 혹은 투자가 가장 시급한 분야는 어디라고 보는가.
문진영= 전문가 설문조사(본보 1월25일자 1,4면)가 보여주듯 양극화가 가장 큰 위험인데, 이는 소득격차 확대 이상의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 19세기 영국에서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가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갖고 다른 교육을 받아 사실상 한 나라에 두 종류의 국민이 있었다고 볼 정도로 소통이 안 됐다. 결국 이게 복지국가 형성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우리사회도 강남에서 교육을 잘 받는 아이와 끼니를 걱정하는 빈곤층 자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같은 국민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 간의 사회계층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봉주= 양극화 문제의 핵심은 중산층 약화다. 중산층 붕괴는 성장동력 약화로 연결돼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국가가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중산층이 다시 제자리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이들이 빈곤층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과거 산업화 시기라면 정부가 복지정책을 쓰지 않더라도 성장에 힘입어 일자리가 늘었고, 이게 곧 고용복지 혜택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는 중산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필수적이다.
현진권= 소득격차 확대는 개방화와 기술발달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동시장에서 숙련 노동 수요는 늘고, 단순 노동 수요가 줄면서 임금이 상대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실 현 상황을 양극화로 규정하는 건 무리가 있다. 아직 그 정도 수준이 아닌 데다 대립적 이미지만 부추길 수 있다. 우리나라 소득 불균형 정도는 유럽보단 나쁘지만 미국보다는 심각하지 않다. 물론 정부가 개입해야 하지만, 성장을 해치지 않은 범위에서 빈곤층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성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교육훈련비 OECD 5분의 1 수준 그쳐
사회= 양극화 혹은 소득격차 확대로 이름은 다르지만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그럼 어느 분야에 지출을 늘려야 하는가.
이= 현재 지식기반 경제구조 하에서 노동시장 스스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힘들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였다. 지금은 청년층 88만원세대 문제에서 보듯 '워킹푸어'(working poor)가 고착화되고 있다. 정부가 실직자 교육훈련과 공공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y)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시장에서의 교육훈련 예산을 늘려 이들이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문제는 이런 정부 예산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5%)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문= 사실 노동시장이 제일 중요하다. 1차 분배시장에서 소득격차가 확대되면 복지정책이 큰 실효성을 얻지 못하고, 정치인도 표를 잃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소득격차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개입하는 게 급선무다.
현=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복지정책이 소득격차 불균형을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소극적 정책수단이 돼야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시장 효율이 떨어지고 성장에 반드시 걸림돌이 된다. 조세정책이 한 예다. 과거 개방화 이전에는 세금을 올려도 자본과 노동이 마음대로 못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과 자본이 그 나라를 순식간에 이탈한다는 게 이미 입증됐다. OECD 국가 대부분이 과거 20년간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과 노동이 몰려와야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는다.
부모 소득 따라 신분 고착화 가능성
사회= 장기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가 가장 심각한 위험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보육 정책에 대한 입장은.
문= 저출산을 '출산 파업'이라고 보는데, 사실 당연한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심각한 격차 속에 무한경쟁 교육, 안심 보육의 부재, 높은 주거비 등을 고려할 때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은 건 합리적 결정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총체적 신념체계가 붕괴된 것이다. 국가가 다른 건 몰라도 보육만큼은 책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실제로 아동에 대한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북유럽 국가의 경우 출산율이 남유럽 가톨릭 국가보다 오히려 높은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 저출산 문제의 경우 2차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따라 보육료의 경우 소득하위 70%까지 지원할 정도로 양적으로 많이 팽창한 게 사실이다. 지원 목적은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고, 가정에서 보호가 안 되는 아이를 국가가 돌본다는 차원이다. 하지만 지금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겨우 50% 수준이고, 저소득층 아이의 발달 지원이 여전히 미흡하다. 문제는 양보다 질이다. 특히,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6세 이전부터 부모 소득 차이에 따라 아이의 신체는 물론 정서, 행동, 인지 면에서 격차가 벌어진다. 질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뤄지지 않으면 오히려 아동이 커서 생산연령층이 됐을 때 사회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현= 사실 양극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저출산은 부담질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고, 고령화는 부담받을 사람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특히, 지금 복지정책이나 예산이 주로 평균수명 70, 80대에 맞춰져 있는데, 앞으로는 100세까지 늘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복지 지출 확대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자칫하면 재정 파탄의 재앙이 올 수 있는 만큼, 지출에 보다 신중을 기하는 게 중요하다.
40년 겉도는 교육정책 혁신해야
사회= 국민들이 보육 이상으로 교육에 고민이 많다. 복지 지출의 효율적 집행 대안은 무엇인가.
문= 부모가 교육에 목숨을 거는 이유 중 하나는 노동시장 양극화다. 이른바 6세(유치원 졸업), 16세(중학교 졸업), 26세(대학교 졸업)에서 인생이 판가름 나는 구조라서 중심부로 가기 위한 노력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끼지 못하면 사실상 평생 박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구조 때문에 부모가 아이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 북유럽 강소국의 경우 비록 명문대를 안 나와도 적정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까닭에 교육경쟁이 우리처럼 극심하지 않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복지 지출을 집중해야 한다.
이= 사회적 일자리가 중요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자칫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 과거 공공취로사업처럼 돼 정부 부담만 늘어나는 일자리로 전락할 수 있다. 교육비 지출의 핵심은 공교육의 신뢰성 강화다. 헌데 지금까지 40년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수능시험 난이도 및 과목 조정,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미시적 규제만 하다 보니 실익이 없다. 오히려 교육시장을 교란시키고 자원낭비만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교육부가 없어져야 교육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현= 교육 문제는 시장에 맡겨놔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82%)이 세계 최고다. 이렇게 많은 고급인력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준다는 건 아무리 북유럽이라도 매우 어렵다. 과거 압축성장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이 너무 오랜 기간 자리잡혀 있었고, 부모 세대에겐 그게 희망이었기 때문에 교육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앞으로 20~30년간 고등학교 졸업해도 떳떳하게 먹고 사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과정이 될 것으로 본다.
자립ㆍ자활 지원 구조로 가야
사회= 현재의 복지 지출 시스템에 대한 개혁 의견도 적지 않은데.
이= 복지가 대상자의 자립ㆍ자활을 막아서는 안 된다. 현재 특정 빈곤층에 집중되는 기초생활보장의 경우 통합급여체계로 돼 있는데, 최저생계비 이하로 떨어지면 모든 혜택을 다 받을 수 있는 반면, 소득이 있어 여기서 벗어나면 기존 혜택을 모두 잃어버리게 돼 있다. 때문에 수급자로 떨어지면 웬만해서는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급여 시스템을 '워크 인센티브'(work incentive)를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문= 서비스 체계가 공급자 위주로 돼 있어서 수요자 욕구에 딱 맞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한다. 같은 돈을 쓰고 효율이 줄어들게 된다. 요양ㆍ보육 등이 모두 시설 위주로 돼 있는데, 수요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고, 국가가 이를 보조해 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례관리사가 좋은 예다. 공급자 위주에서 벗어나 개별 대상자에게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비용 대비 효율을 높여야 복지 체감도가 올라간다.
현= 특정 분야보다는 지출 효율화가 선행돼야 한다. 보편주의적 사고에 따라 정부가 뭐든지 100%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나라와 우리는 조세부담률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따라 할 수 없는 구조다. 우리 형편에서는 예컨대 30% 고소득층은 세금만 내게 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자비로 선택하게 하면 되고, 빈곤층 등 특정 계층에 대해 수익이 뒷받침되는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아동예산, 노인의 8분의 1 수준
사회=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할 때 현재 가장 역량을 집중해야 할 부분은 어디라고 보는가.
이= 양극화와 저출산 문제와 모두 연결되는 것인데,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그 중에서도 역시 빈곤 아동에 대한 투자가 지속가능한 성장이나 사회통합을 위해 절실하다. 사실 아동에 대한 복지지출의 중요성이 경시된 적은 없지만, 자원은 실제 그런 방향으로 배분되지 않고 있다. 민주국가의 힘은 정치적 목소리가 큰 집단에 좌우되는 경향이 큰데, 표를 안 갖고 있는 아동에 대한 복지 지출이 적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예산 중 아동 예산은 노인의 8분의 1에 그친다.
문= 사회정의 측면에서 아동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 아동의 경우 제대로 된 투자가 일자리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복지 지출의 효과 면에서도 가장 탁월하다. 의학적 연구를 보면 만2세부터 환경에 따라 뇌의 신경세포 구조까지 달라진다고 할 정도다. 때문에 아이가 어릴수록 투자가 많아야 하고, 더 나아가 임산부에 대한 투자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복지 예산 부처간 중복ㆍ누락 막아야
사회= 복지 지출이 적지 않게 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전달체계 상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가장 대표적인 게 다문화 예산이다. 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과학부,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만 대여섯 개가 넘고, 프로그램도 30~40개에 이른다. 부처 중복도 문제지만, 각 프로그램에 대한 연계조정이 없다 보니 현장에선 누락과 중복 문제가 심각하다. 아동 방과 후 교육 문제도 교육부와 복지부가 따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복지 서비스도 프로그램별로 따로 관리되기 때문에 정작 수요자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지출을 꼭 필요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현= 정부 조직의 특성상 복지 예산의 경우 각 부처가 가장 쉽게 따올 수 있는 부분이라 서로 경쟁적으로 관련 예산이 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사실 이런 문제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라 공공의 비효율성에서 나오는 고질적 병폐다. 그래서 같은 복지 예산을 쓰더라도 민간을 통해서 서비스되는 게 훨씬 효율적인 이유다.
문= 이런 중복ㆍ누락 문제는 꼭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조정해 가느냐의 것인데, 영국의 경우 특정 이슈에 대해 '내셔널 액션 플랜'(중장기 국가 실행 계획)을 만들어 관련 사회지표에 대한 조정 목표치를 둬 부처 통합적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한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정책이 있지만, 형식에 치중하는 경향이 크다.
공동기획 : 한국일보·보건사회연구원
사회= 강신욱 보건사회硏 연구위원
정리=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 복지 지출 적은 이유…국방비 탓? 선심성 도로 공항 건설 탓!
복지문제에 있어서 국민들이 워낙 받아온 것이 없다 보니, 좀 더 받으면 큰일 날 줄 알고 나라 살림을 지레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국방비 비중이 커서 복지예산을 늘리기 어렵다’, ‘유럽만큼 잘 살고 난 다음에 복지를 생각하자’라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경제성장을 이룬 뒤에 복지예산을 늘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성장에 복지지출이 동반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에 들어선 해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1995년)의 GDP대비 복지지출은 5.22%였지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들은 평균 20%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의 예산지출 구조를 보면, 돈이 없어서 복지예산을 늘릴 수 없다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의 불요불급 지출이 많아서 복지가 뒷전이라는 편이 옳을 것 같다. 2005년 조세연구원의 ‘재정지출의 분야별 재원배분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복지 예산은 2003년 기준 총 재정지출의 9.7%로, 비교시점의 자료가 확보된 OECD 18개국 평균(37.4%)의 4분의 1수준이었다. 보건 부문을 포함하더라도 21.4%로, OECD 평균(51.2%)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표 참조). 한국의 복지지출이 이처럼 적은 이유는 뭘까.
우선, 한국의 국방비 지출(9.6%)은 복지예산을 좌우할 만큼 선진국과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가장 큰 차이는 경제업무 부문이다. OECD 다른 국가들은 경제업무에 10% 안팎을 쓰고 있는데, 한국은 26%가 넘었다.
그렇다면 경제업무는 어떤 것들인가. 내역을 뜯어보면, ‘운수 및 통신’부문이 전체 재정지출의 10.5%나 차지했다. 도로, 공항, 항만,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항목이다. 지어놓고 쓰지도 않는 공항,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선심성으로 챙기는 도로사업 등이 주로 포함돼 있다. 국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제조업 등에 지출되는 예산이 1.7%에 불과한 것을 보면, SOC예산이 국내 재정과 복지예산 감소의 결정적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또 농업ㆍ임업ㆍ어업 부문 지원도 총예산의 7.3%로, 경제업무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역시 SOC에 포함되는 주택 및 지역개발(수자원 등)에 투입되는 예산 비중도 다른 국가에 비해 높았다.
외국과의 비교를 위해 과거 재정지출을 비교한 것이기 때문에, 이 비중은 현 정부 들어서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지지출 구조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중해모델(남유럽모델)은 아동지원 비중이 적어 실패한 모델로 꼽히는데, 한국은 지중해모델보다 더 아동지원이 적었다. 아동지원은 그 나라의 향후 생산성과 성장을 이끄는 부분인데, 일반적인 자녀수당이 없는 국가는 OECD 중에서 미국과 터키, 한국 정도다. 주요국들은 아동ㆍ가족 수당이 복지예산의 10%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은 0.001%(898억원)이다.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를 버는 차상위 계층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만3세가 넘으면 지원이 끊긴다. 주요국들은 소득과 상관없이 자녀가 20세가 될 때까지 한 달에 수십만원씩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미국의 모델을 따르고 있지만, 미국은 평균 출산율이 2명 가량인 다산 국가이다. 미국과 한국은 최저임금이 적고,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은 대표적인 불평등 국가로서 닮은 점이 많지만, 이민자가 많고 고급 인력이 몰리는 미국과는 출산율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한국이 미국의 모델을 더 이상 따를 수 없으며, 약 5년 내로 한국 복지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없으면 한국이 발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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