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태생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사진)의 근작 <다른 여러 아시아> (울력 발행)가 번역 출간됐다. 스피박은 데리다의 이론부터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종횡하는 너른 사유의 영역만큼 읽는 이를 과히 배려치 않는 불친절한 필치로 유명하다. 이번 책 역시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전지구적 자본주의 속에서 서구중심주의가 어떻게 공고화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려면, 이 난해한 학자의 지적 여행을 찬찬히 톺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하다. 다른>
스피박은 이 책에서 남아시아에 국한돼 논의되는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무대를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했다. 구미와 러시아에 의해 규정된 타자로서의 아시아나 경제적 권역으로 이해되는 아시아의 범주와 거리가 있다. 그는 아시아를 "지구적 게임에 저항하는 소외 계층의 대항집단"으로 바라본다. 석유자원에 대한 접근권 차원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은 그 까닭이다. 스피박은 '비판적 권역주의'라는 개념을 새로 제시한다.
비판적 권역주의는 이 책이 테제인 아시아를 복수화하는 방법론이 된다. 스피박은 남아시아, 동아시아 등 자체 권역에 치중하는 단일화 태도를 넘어서 아시아 각 부분의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로 아시아를 재배치한다. 아르메니아, 아프가니스탄 등을 다루는 부분에서 이런 시각이 도드라진다. 이밖에 인문학의 역할을 윤리ㆍ정치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관점, 정신-제도 등 이분법에 빠지기 쉬운 양자 관계를 '대리 보충'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하는 데리다의 이론 등에 이 책의 논지는 발을 딛고 있다.
책은 일곱 개의 에세이로 구성돼 있다. 첫째와 두 번째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계급 분할과 관련된 인권운동의 문제,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남아시아를 모델로 한 기존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을 수정ㆍ확장한 새로운 형태의 아시아 연구에 관한 글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각각 인도 실리콘 산업과 힌두교에 대한 사유를 소재로 '인도적인 것'에 대해 논한다. 마지막 장과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는 정체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이동하는 장치'로 주체를 바라보는 사유를 담고 있다.
끈끈하고 일목요연하게 논리가 이어지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여긴다면, 논리의 도약과 플래시백이 가득한 이 책의 독해는 도전이 될 수 있다. 스피박은 서문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나의 에세이에 관여할 것이라면 공평하라. 제발 남용하지 말아달라. 감내하든가, 제쳐버리길 바란다. 나한테는 세상 사람을 개종시키려는 마음은 없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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