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야권의 개헌 협상이 시작되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이집트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9일 다시 격화되기 시작했다. 야권과 시위대는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의 '쿠데타' 가능성 언급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경찰에 구금됐다 풀려나 민주화의 젊은 상징으로 떠오른 와엘 그호님(31)의 눈물 어린 인터뷰는 이집트 국민의 민주화 열기를 북돋웠다.
시위 16일째를 맞은 이날 AFP통신은 이집트 남부 엘 카르가에서 8일 벌어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최소 3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수에즈 운하 노동자 6,000여명도 파업에 돌입했다고 영국의 BBC는 전했다.
또 AP통신은 시위대 2,000여명이 9일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벗어나 국회 앞으로 진출, 깃발을 흔들며 의회 해산 구호를 외쳤다고 전했다.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도 "무바라크가 떠나기 전까지는 우리도 떠나지 않는다"며 밤샘 농성을 이어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여성과 어린이, 공무원까지 거리로 나왔다"고 전했고, 친정부 성향의 대학교수와 변호사 등 중산층의 가세가 두드러졌다.
야권과 시위대는 또 12일 제2차 '100만인 항의' 시위를 벌이겠다고 발표했고, 노동계의 동조 파업도 촉구했다. 무슬림형제단은 대화 의지를 밝히면서도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을 계속 요구했다.
대규모 시위에 힘을 더한 것은 구글 임원 출신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촉매 역할을 한 그호님이었다. 그는 8일 광장에 나타나 "나는 영웅이 아니다. 진짜 영웅은 여기(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이집트 국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시민들은 석방 직후 TV에서 보던 그호님의 눈물을 떠올리며 그를 직접 보기 위해 광장으로 모여 들었다. 미 시사주간 타임은 "많은 교육을 받았고, 실용적이며 진취적인 그호님은 향후 아랍권 리더십의 전범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부 측 대응도 예사롭지 않았다. 정부 협상 대표이자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는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집트에서 민주주의 문화는 멀었다. 대화가 없을 경우 쿠데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쿠데타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에 대해 5개 주요 청년단체 연합은 9일 "술레이만이 엄청난 불행을 불러올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와중에 시위대 사이에서는 반미 감정이 퍼져나가기도 했다. 시민들은 시위대가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을 먹고 있다는 유언비어에 분노, '켄터키 반대(No Kentucky)'를 외쳤다. 이집트에서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KFC는 서민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싸기 만한 미국의 상징이다. KFC를 먹는다는 거짓말은 시위대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그래서 그들은 'No Kentucky'를 부르짖으며 반미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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