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호칭으로 강의는 도맡아 하면서도 정년이 보장된 교수와는 달리 비정규직인 이른바 '비정년 트랙 교수'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대학에 법원이 일침을 가했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대학당국의 비정년 교수에 대한 차별 실태는 '비정년 교수는 파리 목숨'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최승욱)는 서울 D대학 비정년트랙 강의전담 조교수 이모씨가 이 대학을 상대로 낸 재임용 거부 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대학의 재임용 거부 처분은 무효"라며 "대학은 이씨에게 재임용 심사를 다시 시작할 때까지 매달 466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2009년 9월 재임용이 거부된 이씨는 판결에 따라 지난 1월까지 17개월 간 받지 못한 월급 8,000여만원과 이 대학이 재임용 절차를 실시할 때까지 추가로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씨는 2006년 9월 D대학 조교수가 됐고 2년 후 임용이 한 차례 연장했지만 2009년 재임용 심사에서는 탈락했다. 심사결과 재임용 기준점수인 170점에 0.75점 모자라는 169.25점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점수가 미달되는 경우 대학 규정에 따라 '학과 소속 교원(정교수) 3분의 2 동의'가 있으면 재임용 될 수 있지만, 교수들은 모두 재임용에 동의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170점으로 정해진 기준점수부터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당시 재임용 심사 대상자 21명 중 불과 3명만 170점을 넘었고, 정년ㆍ비정년 교수를 모두 포함한 전체 교원의 강의평가 평균점수도 160점 정도에 불과했다"며 "심사기준으로서 합리적 범위를 초과하는 과도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점수 미달자에 대한 구제 절차인 '학과 소속 교원 3분의 2 동의' 규정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규정은 객관성 합리성이 부족해 동의권자의 자의가 개입할 여지가 크고, 더구나 소속 교원의 동의에 관한 어떠한 절차도 마련돼 있지 않아 임용권자(대학)의 주관도 개입될 위험성이 크다"고 밝혔다. 대학 측이 편의에 따라 교수 재임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대학이 교육의 질적 향상과 경제성 도모를 위해 비정년 교수를 채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비정년 교수는 신분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 특성상 재임용 절차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해당 대학은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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