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가는 길'이란 소설을 읽어보셨는지요? 30대 초반에 읽었던 소설이라 줄거리가 아슴하지만 통도사에 도착한 주인공이 대웅전에 당연히 모셔져 있을 것으로 생각한 불상이 없는 텅 빈 공간에 당황하는 것은 기억합니다. 통도사 대웅전은 텅 비어 있고 가로로 긴 유리창을 통해 금강계단을 보여줍니다.
통도사는 금강계단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에 불상을 모시지 않습니다. 금강계단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공개하지 않는데 통도사 홍매 보러 간 날 문이 열려있어 탑돌이를 할 수 있는 행운을 만났지만 홍매는 보지 못했습니다. 극락보전 오른쪽 옆에 숨어 있는 두 그루의 키 작은 홍매도, 영각 앞에 서있는 늠름한 홍매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지마다 붉은 빛을 머금은 작은 꽃망울들이 맺혀있는 것으로 보아 2주 후면 활짝 필 것 같았습니다. 제주에는 매화가 피었다고 하는데 그 소식이 바다를 건너 통도사까지 찾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모양입니다. 그날 오후 은현리 청솔당으로 돌아와 햇살이 좋아 마당의 나무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데 발 밑에 봄까치꽃 세 송이가 피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올 들어 처음 만나는 풀꽃이었습니다. 나는 매화를 찾으러 온 산을 헤매다 지쳐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의 마당에 매화가 피었더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봄까치꽃 앞에서 올해 첫 봄을 보았습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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