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국제영화제들이 변화의 기로에 섰다. 집행위원장과 주요 프로그래머의 교체 등 인적 구성의 변동이 잇따르고 있다. '지속적 성장이냐, 정체냐'는 내부 고민이 이들의 변화를 주로 강요하고 있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쟁원칙을 내세운 정부의 까다로워진 영화제 지원 정책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 영화제들이 변신의 계절을 맞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제2의 출발을 알린다. 1996년 출범부터 지난해까지 영화제를 이끌어온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물러나면서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공동 집행위원장에서 공동 꼬리표를 뗀 이용관 집행위원장 체제가 시험대에 오르는 해이기에 국내 영화계의 시선이 몰려 있다.
이 위원장은 우선 인적 변화를 통해 자기 색깔 내기에 들어갔다. 이상용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와 전찬일 유럽영화(플래시포워드 부문) 담당 프로그래머의 자리를 맞바꿨다.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의 위상을 감안하면 영화제 상영작에 큰 영향을 줄 인사라는 평가다. 부산영화제는 전용 상영관인 두레라움의 8월 완공과 두레라움에 들어설 영상센터 운영 등 하드웨어 측면의 변화도 맞게 될 전망이다. 부산영화제 한 관계자는 "외형적 성장을 이룬 부산영화제가 재무구조의 안정성 확보 등 자생력 찾기에 들어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변화의 파도를 타고 있다. 권용민 프로그래머 대신 영화전문지 기자 출신 이영재씨를 영입한 것이 변화의 신호탄이다. 권 프로그래머는 2005년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 해촉 파문 등을 거치며 급락한 부천영화제의 위상 회복에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 받았다. 그만큼 내부에 큰 파장과 마찰음을 일으킨 파격적인 인사 조치였다. 영화계에선 "지난해 2월 취임한 김영빈 집행위원장이 본격적인 친정 체제 구축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최근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를 새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국제영화제 막내 격으로 착실한 성장세를 보여왔으나 성장 동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내부 평가에 따른 영입이다. 지난해 제천시의 영화제 폐지 검토 등 잇따른 수난도 새로운 전기 마련의 계기로 작용했다. 오 위원장은 "영화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영화제와의 연대 등을 통해 인구 13만명인 소도시 영화제가 지닌 한계를 뛰어넘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영화제 '넘버 2'의 입지를 다진 전주국제영화제도 정수완 수석프로그래머 대신 영화평론가 맹수진씨를 새 프로그래머로 임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제영화제 육성 지원금 삭감 추세와 지원금 출처 변화도 영화제들의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문화부는 2009년 42억원이던 영화제 국고 지원 예산을 지난해 35억원으로 대폭 삭감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이 돈의 출처를 영화발전기금으로 옮겼다. 영화관람료의 3%를 따로 떼내 조성한 영화발전기금(3,083억원)은 영화 제작과 유통 지원에 주로 쓰여왔다. 영화제 지원에 대한 일부 영화인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영화제에 부정적 시각을 지닌 영화계 일부 원로들이 크게 문제를 삼을 수 있다. 영화계의 해묵은 신구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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