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료의 두 뿌리라는 옛 재무부(MOF)와 경제기획원(EPB). 합쳐지고 쪼개지기를 반복하면서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출신의 꼬리표는 지금까지도 따라붙는다. 어느 정부에서 한 쪽이 득세를 하면, 바뀐 정부에서는 다른 쪽이 권력을 쥔다. 당연히 두 그룹간 대립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현 정부에선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들이 대세다. 초기 기획재정부장관이었던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바통을 이어받은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그리고 정책실장 겸 경제수석이던 윤진식 한나라당 의원과 직전 경제수석이던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 또 진동수ㆍ김석동 전ㆍ현 금융위원장까지. 참여정부 시절에 경제기획원 출신들이 권력을 독점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양상이다.
이번에 경제수석 자리를 두고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출신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꽤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정부 내에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경제기획원의 논리에 힘이 실렸다는 후문. 한 경제 관료는 "이번만큼은 경제기획원 출신이 맡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됐다"고 말했다.
결국 낙점을 받은 건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 기획예산처 재정운용실장 등 경제기획원 출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김대기 신임 청와대 경제수석. 비록 참여정부 때 잘 나갔다는 이유로 현 정부 들어 통계청장,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비교적 '한직'에 머물렀지만 적어도 그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주변의 적극적인 지원 사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리게 될 환경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아 보인다. 연초부터 물가가 4%대 급등세를 보이는데다 가계 부채 문제, 부실 저축은행 처리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 더구나 지근 거리에서 보좌해야 할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별로 없다는 점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현 정부 실세인 백용호 정책실장과 경제 부처 수장인 윤증현 장관과의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얼마나 낼 수 있을지, 다리 역할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