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지 많아 바람 잘 날 없는 마카오 도박왕의 말년
마카오의 '도박왕' 스탠리 호(89) SJM홀딩스 회장이 최근 재산분쟁에 휘말렸다. 카지노로 쌓아올린 엄청난 그의 재산을 두고 가족들의 이전투구가 시작된 것. 재작년 뇌수술을 받은 뒤 공식석상에 뜸했던 스탠리 호가 사태 수습을 위해 지난달 26일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직접 언론 앞에 섰음에도 사태는 갈수록 꼬이고 있다. 4명의 부인 사이에서 17명의 자녀를 둔, 복잡한 가족사도 원인을 제공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아시아 최대 카지노회사 SJM의 지분 가치만 17억 달러에 달하는 등 31억 달러(약 3조4,600억원)로 파악된다. 지난해에 포브스는 스탠리 호와 그의 일가의 재산을 20억 달러로 집계하며 세계 부호 순위 488위에 올렸다.
도박왕 스탠리 호
리스보아를 필두로 2009년 개장한 시티오브드림까지, 스탠리 호와 그의 가족들은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세계 제1의 카지노 도시가 된 마카오의 카지노왕국을 지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마카오 카지노 수입은 라스베이거스(70억달러)의 4배에 육박하는 270억 달러. 이 중 31%를 스탠리 호의 SJM이 운영하는 20개 카지노가 차지했고, 딸 팬시와 아들 로렌스가 각각 합작 형태로 지분을 보유한 MGM차이나와 멜코크라운도 26%를 점유했다. 마카오 카지노 산업의 약 60%를 스탠리 호 집안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2002년 외국 자본에 문호 개방으로 라스베이거스의 샌즈그룹과 윈리조트 등이 진출하기 전까지, 스탠리 호는 40년간 마카오 카지노산업을 독점했다. 1962년 '홍콩의 붉은 재벌' 고(故) 훠잉둥(홍콩이름 헨리 폭) 등과 손잡고 당시 포르투갈령 마카오의 카지노 독점사업권을 따낸 그는 70년 마카오를 대표하는 카지노 리스보아를 열었다.
이후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며 카지노 및 호텔을 비롯, 부동산, 은행, 교통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됐다. 마카오와 홍콩 간 여객을 실어 나르는 고속페리를 운영하는 순탁홀딩스를 세웠고, 마카오국제공항과 에어마카오의 지분을 사들였다. 중국 본토를 육로로 왕래하는 버스 서비스는 물론 경마사업도 한다. 평양에 북한 유일의 카지노를 개설한 이도 스탠리 호다. 지난해에는 마카오에서 납골당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사실상 마카오 경제를 스탠리 호가 먹여 살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카오 세금의 60%를 스탠리 호가 내고, 마카오 사람 3명 중 1명은 직간접으로 스탠리 호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99년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자 스탠리 호의 카지노 사업도 기울 것으로 점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국서 유일하게 도박이 합법적인 마카오로 본토 사람들까지 원정을 오면서, 오히려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은 더욱 번성했다. 마카오 관광객의 절반 이상을 중국 본토 사람들이 차지한다. 스탠리 호가 샌즈, 윈 등 강력한 라스베이거스 라이벌의 공세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중국 본토 카지노원정대에 그의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복잡한 가족사
스탠리 호는 1921년 홍콩서 태어났다. 홍콩 유력 명문가문인 호퉁 가의 자손으로, 영화배우 브루스 리와도 육촌 뻘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유복했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열세살 때 아버지가 주식 투자로 재산을 날리고, 곧이어 형 2명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족을 그에게 남긴 채 떠나버렸다. 홍콩대에 진학한 스탠리 호는 원래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빈털터리가 성공하려면 공부밖에 길이 없다는 걸 깨닫고 열심히 공부한 끝에 장학생이 됐다. 그러나 2차대전이 터지고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자 42년 학업을 중단하고 마카오로 피난했다.
마카오는 그에겐 기회의 땅이었다. 일본계 무역회사에 취직한 그는 타고난 사업수완과 4개 국어(중국어ㆍ영어ㆍ포르투갈어ㆍ일본어)를 구사하는 외국어 실력 덕분에 1년 만에 경영진(파트너)으로 승진하게 된다. 결정적으론 전쟁통에 사치품 밀수에 손을 댄 것이 사업 밑천이 됐다.
이른바 '콴시(關係)'에도 능했다. 2차대전 중에는 일본군에, 냉전시대에는 중국 공산당에 협력한 탓에,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홍콩에선 공식행사 때 말석을 벗어나지 못하는 푸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위원도 지냈다. 영ㆍ프연합군에 의해 유출된 국보급 문화재로, 2007년 소더비 경매에 나온 청 황실정원 위안밍위안(圓明園) 청동12지신상 중 말머리상을 추정가의 6배인 880만달러에 구입한 뒤 중국 정부에 헌납한 것도 화제를 모았다.
맨 주먹으로 출발해 억만장자로 성공을 했지만, 가족간 재산분배 다툼으로 구순(九旬)이 다 된 말년의 삶은 씁쓸한 모습이다. 스탠리 호가 2009년 뇌수술을 받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부터 이런 분란은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첫째 부인과 2남2녀, 둘째 부인과 1남4녀, 셋째 부寬?1남2녀, 40세 연하의 넷째 부인과 2남3녀를 둔, 다복(?)한 가족 관계가 문제였다.
이번 사태의 발단도 SJM의 최대주주이자 지주회사인 STDM(마카오관광오락공사)에 대해 스탠리 호가 개인적으로 보유한 지분(31.7%)이 둘째부인 루시나 람과 다섯 자녀, 셋째부인 이나 찬에게 증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하지만 스탠리 호 측이 "모든 가족(첫째 부인과 장남은 사망)에게 재산을 고르게 분배하려고 했는데 둘째ㆍ셋째부인 측이 동의를 받지 않고 지분을 가져갔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정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시장에선 스탠리 호의 후계자로 꼽히는 딸 팬시 호(둘째 부인의 딸)와 넷째부인 안젤라 렁의 전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반세기에 걸쳐 이룩한 스탠리 호의 카지노 왕국이 누란지위의 형국에 처한 것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