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제격인 영화만 극장가를 장식하지 않는다. 대중적이지 않지만 소수는 열광할 영화 2편도 설 극장가를 찾는다. '환상의 그대'와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가 그 주인공들이다.
'환상의 그대'는 미국 영화계의 대가 우디 알렌의 마흔 번째 장편영화다. 알렌 감독은 뉴욕을 근거지 삼아 할리우드와 일정 거리를 두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왔다. '환상의 그대'는 안경 쓴 찰리 채플린이라 불리는 알렌의 뛰어난 유머 감각이 녹아 들어있다. 뉴욕에서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뒤 조금 더 가벼워진 알렌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 영화다. 여덟 남녀의 사랑과 돈을 쫓는 우스꽝스러운 행태가 냉소 가득한 시선을 통해 전달된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딸 뻘 여자와 재혼하는 칠순의 남자, 인생 반전을 노리며 점쟁이에게 매달리는 노부인, 혼수상태에 빠진 동료의 소설을 가로채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내 등의 지질한 사연이 스크린을 채운다.
안소니 홉킨스, 나오미 와츠, 조쉬 브롤린,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유명 배우의 얼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은 덤. 수작이라 하긴 어렵지만 알렌의 팬이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영화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됐다.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는 중년이 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비로소 찾게 되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불량 소녀였다가 중년의 한 사내를 만나 정숙한 여인으로 탈바꿈했던 피파(로빈 라이트 펜)가 남편의 불륜과 죽음을 목도한 뒤 진정한 사랑과 자아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 조밀하게 묘사된다. 키아누 리브스가 피파와 연정을 나누는 이웃 이혼남으로 출연한다. 자극적일 수 있는 지극히 음습한 소재를 경쾌한 화법으로 풀어낸다. 피파의 끔찍했던 과거를 반전처럼 끼어 넣으며 감정의 증폭을 조절하는 여성 감독 레베카 밀러의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미국의 연기파 배우 로빈 라이트 펜은 몽유병 환자의 모습과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설레는 여인의 심리를 정교하게 표현해낸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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