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여동생을 보내지 않으려 손을 꼭 잡고 도망쳤습니다. 38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동생을 만나 너무 기쁩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사랑하는 여동생 박미경(42)씨를 덴마크로 떠나 보내야 했던 큰 언니 미영(52)씨와 천식(50ㆍ서울) 종기(46), 남길(44)씨, 남동생 남철(37)씨 등 6남매가 눈물의 재회를 했다. 1일 한자리에 함께 모인 가족들은 1973년 광주의 사회복지시설 충현원으로 미경씨가 보내지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다.
평생 못 만날 것 같았던 동생과 설 명절을 함께 보내게 된 천식씨는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일 때마다 혼자 외국에 떨어져 있는 동생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며 "동생에게 아무것도 못해줬는데 이번 설날 맛있는 것을 많이 해주고 싶다"고 감격했다.
광주 서구 양동에서 6남매를 키워온 어머니는 73년 남편이 세상을 뜬 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자 세 살 난 미경씨를 충현원에 보냈다. 가난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했던 이들 남매들도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
고생 끝에 서울에 조그만 보금자리를 마련한 5남매는 20여년 전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 수 있게 됐지만 어릴 적 헤어진 막내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어머니는 막내딸을 보지 못하고 1996년 세상을 떴고 남매들은 5년 전부터 미경씨를 찾기 시작했다. 수 차례 광주를 방문했음에도 여동생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3년 전 충현원에 남겨진 기록을 우연히 발견한 유혜량(61) 목사가 덴마크에 수소문했고 지난해 10월 미경씨로부터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막내 오빠 남길씨는 "동생이 혹시 만나기를 원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늘 걱정했다. 회신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며 울먹였다.
지난달 29일 입국한 미경씨는 감동의 상봉을 한 뒤 "형제가 없는 줄 알고 살아왔다.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덴마크에 있는 남편과 아들들을 데리고 와 전통혼례를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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