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벌어진 이집트 정부와 야권 주류와의 협상에서 '개헌 위원회'의 구성이 전격 합의됨으로써 2주일째 이어져온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협상 국면으로 급속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헌법 개혁, 즉 개헌을 포함한 광범위한 정치개혁 문제를 협상할 위원회가 구성된다는 것은 일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실상 퇴진을 전제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주도하는 과도체제와 야권이 향후 정치일정을 합의로 도출해 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합의는 또 개헌 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을 통해서 개헌안을 제시하는 시기를 3월 첫째주까지로 상정함으로써 협상 국면이 그렇게 급박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야권 가운데서도 무슬림형제단 등 지지기반이 넓은 최대 단체와 알와프드당, 시위대 청년 대표 등이 참여해 일단 야권 주류가 협상에 임하는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협상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야권 협상파들은 개헌 위원회 구성 합의를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6일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이 협상장 밖에서 계속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은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엘바라데이 등 '선 퇴진, 후 협상'파과 의견을 달리하는 야권 25인 현인위원회는 앞서
이날 협상에서 술레이만 부통령이 무바라크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으라는 야권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 여부 및 시점과 관련해 향후 협상 과정에서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바라크는 이미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즉각 하야는 거부하는 등 권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야권은 무바라크 권좌복귀를 완전봉쇄할 수 있는 보장책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6일 협상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밝힌 야권 지도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이 계속해서 '무바라크 선 퇴진, 후 협상'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큰 변수다. 이와는 달리 대표적 협상파인 야권 25인 현인위원회는 앞서 5일 술레이만 부통령과 과도정부 구성방안을 논의한 뒤 술레이만 부통령이 과도정부 수반으로 대선을 관리하는 시나리오를 제안, 엘바라데이 측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바라는 시위대의 요구와 퇴진 불가를 고수하는 무바라크의 입장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야권이 협상 국면에서 분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집트 헌법(제139조)에 따라 무바라크의 퇴진을 강제할 수 없다는 현실론은 협상파의 입장을 뒷받침해 주기도 한다. 무바라크가 명목상 지위는 유지하되, 실질 권한을 술레이만 부통령이 행사하게 한다면 공정 선거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이런 입장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집트 헌법 제82조는 부통령이 헌법 개정을 요구하거나 의회를 해산할 권한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무바라크가 명목상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도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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