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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음식을 공급하는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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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음식을 공급하는 공덕

입력
2011.01.3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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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을 할 때였다. 허름한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잠시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손님도 별로 없는 시간이었고 특이한 복색의 외국인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식당에서 주문을 받던 사람이 다가 와서 말을 걸었다. 그저 식당의 주인쯤 되리라 여겼는데, 자신을 소개하며 직업이 대학교수라고 하였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대학교수가 식당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서 어떻게 식당 일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는 식당의 주인이 아니고 시간제로 근무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식당 일을 하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인도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지위가 상당히 높은 계층이 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인도는 인구보다 신(神)이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많은 종류의 신을 믿고 섬기는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 많은 신들에게 기도하고 공물(供物)을 올리는 행위가 일상 생활이라고 할 정도로 인도인의 삶은 대단히 종교적이다. 그 신들에게 올리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힌두의 가장 상위 계층인 브라만들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인도에서 무척 귀한 직업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화가 다소 변하고 있지만 승려가 되려고 출가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부엌일이었다. 설거지와 상차림을 거쳐서 국을 끓이는 과정을 지나면 밥을 하는 공양주(供養主)가 된다. 정식 승려가 되지 못한 행자라도 공양주가 되면 일종의 특권이 부여된다. 사중(寺中)의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아서 처리해야 하는 게 행자의 위치이지만, 공양주 행자는 밥하는 일 외의 여타 잡다한 일들이 면제가 된다. 또한 대중이 많이 사는 큰절 외의 소소한 사찰에서는 공양주 보살이 주지와 엇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보살(佛菩薩)님께 음식을 해 올리고, 대중의 음식을 만들어 공급하는 그 위치가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음식의 공급이 불안하면 기본적인 일상이 무너지게 된다. 항상 정해진 시간에 예불과 식사를 하고, 규칙적이고 안정된 생활을 해야 하는 수행자들에게 음식 공급의 불안정함 보다 더 큰 스트레스와 문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들은 행자 시절에 공양주 생활을 한 공덕으로 평생 대접받으며 수행한다고 말하곤 한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행자 기간에 부처님전에 공양을 해 올리고 대중에게 음식을 만들어 공급한 공덕이 그렇게 크고 귀하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여성들을 봐도 사회 활동의 유무를 떠나서 가족들에게 직접 음식을 해서 먹이는 주부가 가장 힘 있고 당당하다. 어떤 일보다 우선하여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여성이 스스로도 자부심이 있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인정하는 현모양처인 것이다. 여성들이 사회 활동에 나서면서도 가족의 음식을 직접 챙길 때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아니었다 싶다. 양성 평등의 시대가 심화되어가면서 점차 여성들의 음식 조리가 줄어들고 있다. 이와 동시에 여성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공덕의 근원도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50대 남성들에게 요리를 배워보라고 자주 권하곤 한다. 남녀 누가 하던지 가정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행위는 그 가정에 넉넉한 공덕이 생성되는 일이다. 여성들이 피로하고 지치고 싫증이 났다면, 인생의 전환기에 접어든 남성들이 그 공덕을 이어 받아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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