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행정부가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 가능성에 대비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듯한 분위기다. 무라바크 정권 유지와 민주화 개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무바라크 퇴진 이후의 중동 정세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9월 예정된 이집트 대선을 "(민주화) 약속을 이행하는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이 밝힌 연 15억달러의 대 이집트 군사원조 "재검토" 입장이 의회 등 정치권에서 계속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바라크의 몰락은 시간문제"(존 네그로폰테 전 유엔대사), "무바라크는 우리가 반대하는 모든 것의 상징"(에드워드 워커 전 이집트 주재 미 대사) 등 정권 퇴진을 기정사실화하는 발언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 퇴진이 중동 전체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까 하는 점에는 미국의 우려가 쏠려 있다. 1979년 친미 팔레비 정권이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진 이후 30년 이상 중동의 반미 교두보로 입지를 굳힌 이란의 악몽이 이집트에서 재연될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최초의 아랍권 국가로, 미 중동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역사적인 '이슬람과의 화해' 연설 장소로 카이로를 선택한 것도 이런 상징성 때문이었다. 이집트에 반미, 반 이스라엘 정권이 들어선다는 것은 이스라엘 안보는 물론, 중동에서의 미국 입지에 엄청난 타격을 의미한다.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 등 친미, 온건 이슬람 국가로 시위가 도미노처럼 번질 수도 있다. 올해 이집트를 비롯, 무려 22개 아프리카 국가에서 대선 및 총선이 치러진다는 것도 이집트 사태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요인이다.
이집트 야당지도자로 급부상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반미 인사라는 점도 문제다. 1997~2009년 세 차례 연임하며 12년간 IAEA를 이끈 엘바라데이 전 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구실이 됐던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해 "근거 없다"고 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대립했다. 이란 핵문제에서도 미국과 갈등관계에 있었다. 엘바라데이는 최근 "미국이 독재자 무바라크에게 민주주의를 이행하라는 것은 웃음거리에 불과하다"며 "이라크에서의 미국은 실패한 정책을 추구해왔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중동정책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네이선 브라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미국의 중동정책은 70~90년대 입안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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