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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샤갈과 유대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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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샤갈과 유대의 빛

입력
2011.01.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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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의 백미는 1920년에 제작된 ‘유대인 예술극장의 소개’다. 모스크바유대인예술극장의 단장 알렉세이 그라노프스키의 의뢰로 제작된 이 작품은 본디 유대인극장을 장식하고 있었지만 스탈린의 유대인 탄압이 극심했던 37년 철거돼 약 50년간 트레챠코프미술관의 수장고에 묻혀 있었다. 마르크 샤갈(1887~1985)조차 73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소비에트 당국의 감독 아래 그림을 잠시 둘러볼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샤갈이 33세 때, 즉 전성기에 제작한 이 벽화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91년의 일. 화가가 서거한 85년 구 소련에서 글라스노스트(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작품의 복원과 전시가 허락됐고, 스위스의 피에르지아나다재단이 후원으로 복원 작업이 진행됐다.

근년에 기획된 특별 순회전 ‘샤갈과 러시아유대인극장의 예술가들(Chagall and the Artists of the Russian Jewish Theater)’은 이 그림을 유대주의의 생존과 승리를 증언하는 상징으로 치켜세움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모스크바유대인예술극장과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립극장이 된 모스크바하비마극단의 활동을 재조명하는 뜻 깊은 기회가 됐다(유대인예술극장은 보다 널리 통용되는 이디시어로, 하비마극단은 사라져가던 정통 히브루어로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유대인 예술극장의 소개’는 높이가 2m84㎝에 폭이 7m87㎝에 이르는 대작으로 샤갈 특유의 절충주의를 잘 보여 주는 사랑스럽고 낙관적인 그림이다. 화면의 구성 방식은 들로네풍의 입체주의를 따랐지만 어디까지나 그림은 서사적이고, 동원된 여러 형식은 ‘자유주의적 유대문화의 현대적 고취’라는 메시지에 봉사할 따름이다.

이 그림과 함께 제작된 우의적 연작 ‘문학’ ‘연극’ ‘음악’ ‘무용’에서도, 또 ‘무대 위의 사랑’이나 ‘결혼 피로연 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경쟁자였던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등 추상미술의 스타일을 장식으로 활용하는 가운데 유대인의 전통 문화를 통해 인류 보편의 예술적 우의(友誼)를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애썼다.

오늘날 샤갈이 유대인 사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까닭도 그러한 보편성에 있을 터. 이는 폐쇄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임근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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