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 이원곤)는 31일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을 1,600억원대의 횡령ㆍ배임을 저지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비자금 관리를 총지휘한 이 회장의 모친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와 오용일 태광그룹 부회장, 진헌진 티브로드 전 대표 등 그룹 전현직 임직원 6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태광그룹 수사는 3개월 만에 일단락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 등은 무자료 거래 등을 통해 536억원의 회사 자산을 횡령하고,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매수해 회사에 955억원의 손해를 끼치는 등 회사에 1,491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대법원 양형 기준을 감안하면 이 회장은 징역 7~11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검찰은 압수수색과 관계자 소환조사를 통해 태광그룹의 차명계좌 7,000여개와 출처 불명의 자금 4,400억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회장 등이 이같이 조성한 비자금을 개인적인 세금 납부(710억원), 묻지마 채권 구입(200억원), 가족보험 가입료(313억원) 등에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사용하지 않은 돈은 차명부동산 등으로 보유하고 있는 등 비자금 전체의 사용처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당초 수사 초기 제기됐던 태광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혐의를 밝힐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청와대나 방송통신위원회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공모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상속세 추징 당시 국세청 미고발 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문제 삼지 않았다"고 밝혀 이 회장 등의 개인적 비리 외에는 수사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했다. 이 회장 3차례 소환조사와 10일 간의 구속수사, 그룹 본사 등 30여곳에 대한 7차례 압수수색, 116명의 관계자 소환, 국세청 및 금융감독원 관계자 조사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사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은 전날 기소한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 결과와 비교할 때 "한화가 '장교동팀'으로 불린 비자금 관리팀을 운용하는 등 조직적 행태를 보인 반면, 태광은 일부 가신(家臣)을 통해 총수 일가가 직접 돈을 건네받는 등 고전적 수법을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태광그룹은 "이번 일을 계기로 투명하고 선진적인 경영 시스템을 재정비하겠다"면서 "검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법원 공판 과정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남상욱 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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