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내 블랙박스가 묻힐뻔한 뺑소니 사건을 해결했다.
30일 서울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안모(62)씨는 27일 오전 6시30분께 승합차를 몰고 가다 종로구 종로5가에서 길을 건너던 조모(62)씨를 치었다. 안씨는 5~6m쯤 가다 차를 세운 뒤 경찰에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어 출발했는데 갑자기 뭔가 검정물체가 튀어나와 부딪혔다”고 신고한 뒤 기다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확실한 교통사고였다.
그러나 사고 2시간 뒤 택시기사 김모(43)씨가 경찰에 사건관련 제보전화를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앞서가던 택시가 도로에 쓰러진 보행자를 밟고 지나갔다. 사고 당시 화면이 담긴 블랙박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현장에 출동했던 담당 경찰관도 안씨 승합차의 파손 정도에 비해 조씨의 상해가 심하다 여기던 차였다.
경찰은 이날 오후 2시께 김씨의 택시 블랙박스에 찍힌 정보를 토대로 거리에 쓰러진 조씨를 치고 달아난 택시기사 백모(55)씨를 찾았다. 백씨의 택시 범퍼에는 조씨의 머리카락과 피가 묻어있었다.
게다가 백씨는 경찰에 뜻밖의 진술도 했다. 백씨가 화물트럭 바로 뒤에서 택시를 몰았으며, 그 트럭도 쓰러진 사람을 치고 갔다는 것이다. 백씨는 “사고현장에서 10m 떨어진 곳에서 차를 세운 뒤 먼저 정차해있던 트럭 운전사와 ‘뭔가를 치고 온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경찰은 백씨가 적어놓은 트럭번호를 추적해 같은 날 오후 7시께 트럭 운전사 이모(40)씨를 붙잡았다.
결국 승합차 운전자 안씨가 경찰에 신고하는 사이 트럭과 택시가 길 위에 쓰러져 있던 조씨를 연달아 치고 달아난 셈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에서도 조씨는 교통사고로 인한 다발성 손상으로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추가로 차체가 높아 뚜렷한 물증이 남지 않은 이씨의 트럭 등 가해차량 3대에 대한 정밀감식까지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목격차량의 블랙박스 덕에 다른 가해자 2명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과수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3명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 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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