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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들어 있는 희망의 카페라떼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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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들어 있는 희망의 카페라떼 드세요"

입력
2011.01.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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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바리스타 송현미·김두나씨서울 강서 복지관 레인보우 카페지기로

"안녀엉하세요, 네에인보우카흐페입니다."

28일 오후 1시 서울 강서구 방화동 강서뇌성마비사회복지관 1층에 들어서자 그윽한 커피 향이 발길을 붙잡는다. 로비 한구석 2평 남짓한 공간, 화사한 분홍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카페지기 송현미(34)씨와 김두나(30)씨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어으떤 거 드시겠어요(송현미) 소오은님(김두나)." 비장애인에겐 2초도 안 걸릴 짧은 문장이지만 둘은 입 밖으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기 위해 온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호흡이 짧은 문장이라도 사이좋게 나눠 전달한다.

둘은 선천성 뇌성마비장애인(뇌병변장애2급)이다. 휠체어를 타지 않고 혼자서 걸을 수 있지만 손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고 언어장애도 있다. "몸은 불편할지 몰라도 커피는 맛있게 잘 만들어요." 둘은 21일 문을 연 레인보우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정식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건 아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바리스타 전문가로부터 매주 한번씩 커피 만드는 법을 따로 배웠다.

송씨와 김씨는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커피를 만든다. 사회복지사 한 명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지만 원두 등 재료 구입만 돕는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고 청소하고 기계를 관리하는 모든 일을 송씨와 김씨가 도맡는다.

아직은 기계에 많이 의존한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모두 버튼 하나로 해결한다. 직접 만드는 것도 있다. "카라멜 마끼아또는 손이 많이 가요, 캐러멜시럽을 에스프레소하고 섞어서 거기에 또 우유를 넣고 캐러멜소스를 얹어야 마무리되거든요." 5분 정도 걸리니 느린 편은 아니다. 이렇게 정성을 담아 하루 평균 40~50잔의 커피를 판다.

송씨(경기 부천시), 김씨(경기 김포시) 모두 집이 멀어 아침에 일어나는 게 좀 고되지만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송씨보다 장애 정도가 덜한 김씨는 대학 졸업 후 일반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지만 8개월 만에 그만뒀다. "사무보조를 했는데 제가 말도 어눌하고 손이 느리다고 나가라고 했어요." 김씨는 이후 몇 번 더 취업을 시도했지만 사회의 벽은 높았다. 송씨도 사회적 편견을 늘 경험하고 살았다. "다른 장애인과 커피숍에 들어가면 모두 싸늘하게 쳐다보죠, 마치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들이 온 것처럼."

그래서 늘 사람들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먼저 다가서기로 했다. 손님들과 거리감을 좁히려고 일부러 분홍색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도 한다. 문을 연 지 일주일밖에 안 돼 단골은 거의 없지만 복지관에선 이미 인기 장소로 떠올랐다.

뇌성마비를 앓는 아이의 물리치료 때문에 매주 두 번 복지관에 들른다는 김기원(41)씨는 "원래 아메리카노(1,000원)를 좋아하는데 가격이 싸서 일부러 카라멜 마끼아또(2,500원)를 마셔요. 추운데 오래 서있는 모습 보면 걱정도 되지만 밝게 웃으면서 일해 나도 덩달아 힘을 얻고 가는 걸요"라고 했다.

두나씨는 앞으로 직접 커피숍도 차려볼 생각이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눈치 안보고 들어올 수 있게 문턱도 없앨 겁니다." 현미씨도 한마디 거든다. "난 손이 많이 불편하지만 라떼아트(커피 위에 무늬를 만드는 기술)를 배워 꼭 곰돌이 문양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둘은 새끼 손가락을 힘겹게 걸어 약속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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