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새터민들이 설을 맞아 고향의 맛과 정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류경옥(柳京屋)에 마포구에 사는 새터민들이 하나 둘씩 들어섰다. 류경옥은 탈북자단체 NK지식인연대가 지난해 4월 문을 연 북한음식 전문식당으로, 새터민이 직접 평양온면ㆍ함흥냉면 등을 만든다.
'말하는' 입은 순간순간 바뀌지만 '먹는' 입은 쉬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만두를 빚으며 떠나온 고향의 맛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함경도에서 내려온 함모 할아버지는 설기떡이 생각난다고 했다. "남쪽의 백설기랑 비슷한 건데 부슬부슬하지 않고 입천장에 떡떡 늘러 붙는데 그게 참 맛있다"고 했다. 평양에서 살았다는 장모씨는 꿩고기를 얹은 냉면이 일품이라고 했고, 함북 무산이 고향인 마모씨는 감자녹말로 만든 넝마국수를 남쪽에서는 맛볼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온 현모씨는 "여기는 순대에 당면을 넣어 순대 맛이 안 난다"며 "진짜 순대를 먹고 싶을 때면 찹쌀ㆍ묵은지ㆍ고기를 넣고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만두는 집에서 남는 음식을 두루 넣어 만든다는 점에서 남과 북이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북에서는 남에 비해 고기를 많이 넣지 못하고 푸짐하게 빚어 더 크다고 했다.
북쪽의 설은 남쪽과 얼마나 다를까. 북쪽에선 양력설만 쇠다 2000년대 들어 민족성을 강조하면서 음력설에도 이틀씩 쉬고 있다. 북에선 군(郡) 경계를 넘어가려면 통행증이 필요해 가까이 사는 친척들만 모여 남쪽 같은 민족대이동은 없다고 했다.
차례는 음력설이나 양력설 중 사정에 따라 지내는데, 안 지내는 집도 많다. 차례상엔 고향에서 많이 나는 음식을 주로 올리는데 60년대 봉건문화 청산으로 제기가 없어져 일반 그릇을 쓴다고 했다. 또 절을 할 때는 남녀가 함께 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고 했다.
한 새터민 여성은 "북쪽 남자들이 더 가부장적"이라며 "집안일을 돕다가도 누가 찾아오면 손 닦고 안 한 척한다"고 귀띔했다. 북에서 이틀씩 쉬는 휴일은 1년에 네 번으로 양력ㆍ음력설과 김일성 생일(4월15일), 김정일 생일(2월16일)이다.
평양에 살다 2004년 남으로 온 현모씨는 만둣국을 먹으며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보니까 남쪽에서는 함께 안 살면 할아버지ㆍ할머니ㆍ형제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가족과 함께 내려오지 못한 경우가 많은 우리는 같은 처지 사람들이 모두 가족"이라며 "이렇게 모여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 명절 기분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마포구 자원봉사센터 소속 봉사자 15명이 참여해 새터민 20여명과 음식을 준비했고, 인근에 사는 홀몸노인 20명을 초청해 만둣국을 대접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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