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성철 경제부장
기옥 금호건설 사장은 ‘토박이 건설맨’이 아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표적 재무통으로, 지난 해 7월 지금 자리에 임명되기까지 건설 쪽에선 일해 본 적도 없다.
보는 관점에 따라선 상당히 ‘무모한 인사’일 수도 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건설의 당면 과제는 누가 봐도 조기 정상화. 그런데 이 막중한 과제를 건설 쪽엔 발도 디뎌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일 수도 있다.
물론 재무전문가이기 때문에, 회사를 재무적으로 건실하게 만들라는 중요한 미션은 주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기 사장은 취임 초부터 판에 박힌 ‘재무통’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자금 보다는 사람이 먼저라고 판단했고, 회사정상화의 첫 작업을 직원들이 기를 펴게 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무조건 아끼고 줄이면 어떻게든 회사 재무구조는 개선되겠죠. 그러나 사람이 남아있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인 직원들이 빠져나가고 해보겠다는 의지가 상실됐다면 그건 겉만 멀쩡하고 속은 골아있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약효는 의외로 빨리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약정을 맺은 뒤 출자전환 감자 등 워크아웃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실적은 쑥쑥 좋아졌다. 특히 지난해 공공부문에선 수주액 1조원을 돌파하며 업계 7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기 사장은 “욕심을 낼 생각은 없다”면서도 “당초 2014년 워크아웃 졸업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1년 정도 앞당겨 조기졸업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기 사장은 지금의 워크아웃 과정을 슬기롭게 이겨낸다면, 오히려 튼튼한 체질로 바꾸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사람 자르는 것으로 여기는데 사실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워크아웃 회사든 아니든,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적응하고 기업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세우는 모든 과정과 전략들이 다 구조조정인 거죠. 워크아웃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든 과정이지만 이 기회에 군살을 제거하고 환부를 도려내 날렵하고 건강한 몸매로 만든다면 훨씬 더 경쟁력 있는 회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금호건설은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취할 것은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전략.
우선 주택시장. 기 사장은 “전체적으로 주택비중은 좀 줄일 계획”이라며 “다만 시장침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념의 주택을 원하는 수요는 얼마든지 있는 만큼 그런 신시장, 틈새시장 위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집중하려는 쪽은 역시 해외다. 지금도 베트남에선 금호가 가장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자랑하고 있는데, 앞으론 중동 등 다른 지역으로도 사업무대를 넓혀간다는 구상이다.
해외공사분야 역시 다변화할 계획. 금호건설이 현재 가장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는 공항건설과 도시개발사업. 기 사장은 “공항에 관한 한 독보적 기술력을 갖고 있는데 앞으로는 플랜트와 환경분야에도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외형을 키우는 것은 CEO에겐 참 물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일단 매출을 늘려야 시공능력평가순위를 높일 수 있고, 그래야 각종 수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무리한 외형확대는 결국 ‘독배(毒杯)’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지금 단계에선 외형보다 내실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추락한 신인도를 다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이지요. 그리고 워크아웃이 끝났을 때 훨씬 더 강한 회사로 변해있을 겁니다.”
정리=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잊을 수 없는 순간들
기옥 사장은 지난해 11월 회사 임직원들과 함께 서울 홍제동 인왕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잡은 달동네인 개미마을을 방문해‘사랑의 연탄 나르기’ 봉사 활동을 가졌다. 기 사장은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 곳에 거주하시는 주민 대부분이 혼자 사시는 노인들인데, 이분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직접 연탄과 쌀을 모든 가정에 일일이 전달해 드렸습니다. 고맙다며 손을 꼭 잡아주시던 주민들을 대하니 사회봉사활동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뜻 깊은 일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건설의 모토가 ‘아름다운 기업’입니다. 직접 봉사활동에 참석해보니까 왜 우리 회사가 아름다운 기업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어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건축시공도 그런 마음으로 하려고 합니다.”
전태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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