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사건만큼 장기간 정치ㆍ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은 흔치 않다. 박씨는 지역 중소기업인으로 정치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여야, 지역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친분을 맺으며 뇌물을 준 사실이 드러나 나라 전체를 공황상태에 몰아넣었다. 2008년 박씨의 태광실업 세무조사로 시작된 이른바 '박연차게이트'는 전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까지 낳으며 장장 2년여 만에 수사와 사법처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 사건으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이들에는 전ㆍ현 정권의 실세, 전 대통령 인척, 전직 국회의장들을 포함한 정치인, 자치단체장, 정부와 청와대의 고위 관료, 공기업 대표까지 두루 포함돼 있다. 수사대상으로 넓히면 전 총리 후보서부터 고위 판ㆍ검사까지 분야별 고위직이 거의 망라돼 있을 정도다. 사회수준과 국민의식이 어떻게 변하든, 부정한 돈과 이권에 얽혀 법과 원칙을 농단하는 구태가 여전함이 적나라하게 확인된 셈이다. 이 사건이 고질적 정경유착문화를 영원히 묻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건의 본질이 이처럼 엄연함에도 대법원 판결마저 정치적으로 왜곡하려는 시도는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한다. 대법관들이 이견 없이 합의부에서 낸 판결인 데다, 주심이 대표적인 진보성향 판사임을 감안하면 정치적 판결 운운은 언어도단이다. 더욱이 "야당은 죽이고, 여당은 살리고"라는 단순이분법은 각기 다른 죄질과 법적 판단을 뭉갠 기만적이고 저급한 어법이다. 판결마다 유ㆍ불리를 따져 수시로 '사법정의'와 '정치판결' 논평을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부끄러워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지금이 정권 입맛에 따라 판결, 그것도 대법원 판결이 영향 받는 그런 시대인가? 어제 판결로 강원도지사 직을 잃은 이광재씨는 일부 재판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짤막하게 토로했을 뿐 시종 신중한 언행을 보였다. 이런 풍토 속 정치인으로서 드물게 책임감을 보인 처신으로 평가한다. 이제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은 접는 것이 옳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다시는 이런 구시대적 문화에 얽히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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