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 미스터리'가 축구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일전 전날 승부차기 순번을 정한 조광래(57) 감독은 구자철(22ㆍ제주)→이용래(25ㆍ수원)→홍정호(22ㆍ제주)를 1~3번 키커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한번도 일본의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일본의 3-0 승리로 끝나면서 4번 손흥민(19ㆍ함부르크), 5번 기성용(22ㆍ셀틱)은 킥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중압감의 승부차기, 더구나 한일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조 감독은 왜 A매치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20대 초ㆍ중반의 '젊은 피'들을 먼저 내보냈을까.
승부차기에서는 1번과 5번 키커가 가장 중요하다. A매치 100경기, 126경기로 각각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박지성(30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34ㆍ알 힐랄)가 왜 1번과 5번을 맡지 않았느냐는 게 팬들이 가장 의아해 하는 대목. 어느 정도 이유가 있었다.
박지성은 '승부차기 울렁증'이 있다. 1998년 수원공고 3학년 당시, 강릉에서 열린 금강대기 8강전에서 실축해 팀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전국대회 4강에 올라야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승부차기에 울렁증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영표는 왼쪽 풀백 수비수다. 전문 키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역시 승부차기 악몽이 있다. 동메달을 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란과의 4강전 승부차기에서 실축, 3-5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키커로 나서 실축할 경우, 어린 후배들에게 미칠 악영향도 조 감독으로선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광래호'의 전담 키커 1순위는 기성용이다. 정교하면서도 강력한 킥 능력을 가진 기성용은 2010 남아공월드컵부터 아시안컵까지 프리킥, 코너킥 등을 도맡고 있다. 특히 한일전에서 박지성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자신감도 넘쳤다.
조 감독은 그러나 기성용 대신 상승세의 구자철을 1번으로 선택했다. 구자철은 이번 대회에서 4골을 터트려 득점 공동 1위다. 박지성과 이영표를 비롯해 이청용(23ㆍ볼턴), 지동원(20ㆍ전남) 등 킥 능력이 좋은 이들이 모두 교체로 물러난 상황에서 '구자철 카드'가 조 감독으로선 가장 믿을 만한 구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패착이 됐다. 반면, 일본은 페널티킥을 실축한 혼다 게이스케(CSKA 모스크바)를 1번으로 내세웠다.
1966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승부차기 제도를 도입한 이후 한국축구가 한 골도 넣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첫 키커 구자철의 실축이 대표팀 전체를 흔들었다.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2, 3번의 이용래-홍정호까지 흔들어 놓았다.
기성용까지 키커 5명의 평균 나이는 불과 22세. 역대 A매치 승부차기 최연소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최종 목표로 닻을 올린 '조광래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중요한 고비에서 심리적 동요를 이겨내지 못하는 등 경험부족을 드러내며 51년 만의 우승컵 탈환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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