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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68> 불국사석가탑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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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68> 불국사석가탑의 수난

입력
2011.01.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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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는 천년 고찰인데다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가 많아 방문객에게 신라 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는 두 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우뚝 서있는데 동쪽의 것은 다보탑(多寶塔), 서쪽의 것이 석가탑(釋迦塔)이다. 석가탑의 정식 명칭은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이며 국보 제21호로 지정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탑을 받치는 상층 기단부의 받침돌인 갑석(甲石)의 일부가 3층탑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금이 생기면서 틈이 벌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문화재 당국에서는 부랴부랴 전문가를 현장에 보내 원인을 진단한 결과 결국 탑을 해체해서 다시 복원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금년부터 설계를 실시하고 해체복원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5월경부터 실시 예정으로 있다는 것이다.

이 석가탑은 통일신라시대 김대성에 의해 서기 751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석가탑은 다보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진수라고 불리면서 지금까지 1260년 동안 제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1966년 9월6일, 도굴꾼들이 탑에 간직되어 온 사리장치를 약탈하기 위해 도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실로 천년이 훨씬 넘게 지켜온 석가탑 최초의 수난이었다. 다행히 탑은 무너지지 않았고 도굴은 미수에 그쳤지만 탑이 손상을 입었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3층의 지붕돌인 옥개석을 드러내는 중에 잘못되어 3층 옥개석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작업상의 실수였다. 그러나 2층 탑신에 마련된 사리구멍(舍利孔)에서 석가탑의 사리장치와 함께 장엄구가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도 목판 인쇄물인 이 발견되어 신라시대 불경을 목판 인쇄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목판인쇄물이고 또 다른 인쇄물을 통해 고려시대에도 해체복원 공사가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렇게 석가탑 사리관련 유물을 수습하고 탑은 다시 복원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불국사복원공사가 진행되면서 오랫동안 없어졌던 석가탑 상륜부를 탑의 제일 윗부분에 놓인 노반 위에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와 같이 복원된 석가탑의 전체 높이가 7.4m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해체 복원하게 되면 46년 만에 또 다시 탑을 손보는 것이 된다. 금 가고 틈이 벌어진 이유가 석탑의 노화와 풍화로 판단하고 있다는데 이 또한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통일신라시대 마련된 많은 석탑의 경우 모두 노화와 풍화로 석가탑과 같은 결과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물론 돌로 만들었다고 영구히 그 상태를 유지한다고 생각은 하지 않겠지만 해체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다. 원인규명을 철저히 한 후 해체를 하던 부분 보수를 하던 결정해야 탑에 대한 도리이고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너무 쉽게 해체하고 복원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원인규명을 철저히 한 후 결정을 해도 늦지 않을 뿐 아니라, 석가탑에 금이 조금 갔다고 지금 바로 무너질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과거 석탑문화재의 해체 복원 사례를 분석해 필요한 대책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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