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입다 니체를 파고드는 연구자와 직관적 이미지를 추구하는 만화가를 한 바구니에 담으면 어떻게 될까. 책보세 출판사가 이달부터 발간하는 격월간 (사진)는 '만화의 재미와 인문지식의 진중함은 상충한다'는 편견을 깨보려는 시도다. 강단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 멤버들의 철학적 사변이 한 권에 엮여 있다. 재미와 의미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편집장 이기진씨는 일본 현대사상가 츠루미 ??스케의 '만화는 경직된 인간의 정신(사유)을 이완시키고 유연케 하는 맨손체조'라는 말을 인용하며 "만화로서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그럼으로써 만화의 진정한 재미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포부를 창간사에 밝혔다. '철학적 인간형을 찾아서' 기획을 마련한 수유+너머 연구자들은 "자, 이제 우리 모두 즐겁게 인문학의 드넓은 바다에 빨대를 꽂아보자!"고 훨씬 경쾌한 발문을 썼다.
창간호의 연재 만화들은 다양한 사회적 관심을 담고 있다. 탁영호 작가의 '봄.봄.봄.'은 4ㆍ19혁명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역사 극화로 그 시절 민중의 삶과 사랑, 눈물과 변절, 애환과 희열을 다양한 사람들의 눈을 빌려 들여다본다. 노숙자'필'이 나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하는 '불후의 명작'은 후줄근한 서울을 배경으로 한 <파우스트> 다. 순정만화와 판타지, 역사극화의 요소가 섞인 '천상열차'도 흥미롭다. 파우스트>
수유+너머가 만든 기획 섹션은 종합계간지 특집의 '마블(슈퍼히어로 시리즈 유명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버전'쯤 된다. 바흐친, 데카르트, 들뢰즈를 연재 만화 사이에서 읽히도록 닦고 조이고 기름친 연구자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정신분석학 연구자와 만화가가 함께 만든 '젊은 외디푸스' 등의 작품도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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