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약계층 자활·고용 돕는 사회적 기업 육성도 '하나의 대안'
#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의 한 문구도매상. 월요일만 되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이날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문을 열었다. 지난 13년간 인근의 한 대기업 계열사에 문구용품을 납품해왔지만 이번 주부터는 거래가 끊겼기 때문. 사장 최모(48)씨는 "작년 11월에 갑자기 납품가를 20% 낮추라기에 사정을 알아봤더니 다른 대기업 계열사가 단가를 16% 낮춰주겠다고 했다더라"며 "대기업이 문구류 납품에까지 뛰어들 줄은 몰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 등이 한 목소리로 일자리 창출을 외치지만 실제 늘어나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오히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때문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게 현실이다. 당장 대기업의 무분별한 업종 확대가 일자리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SK와 대상 등 대기업이 학원사업에 뛰어든 것, LG와 현대차 등이 농업회사를 계열사로 포함시킨 것 등이 대표적이다. 하나같이 그룹의 주력업종과는 무관한 분야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05년 702개였던 30대 그룹 계열사가 2010년에는 1,069개로 5년 만에 1.5배나 증가했다. 특히 2006년 말 중소기업 고유업종제가 완전 폐지된 뒤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80여개, 120여개씩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10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전국 중소기업 273개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근 1년간 대기업의 신규업종 진출로 피해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78%에 달했다.
지난해 연말을 뜨겁게 달궜던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 논란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동네치킨점이 5만개에 육박할 만큼 대표적인 골목상권 품목에 대기업이 진출한 것 자체가 애초 의도와 무관하게 '동네상권 죽이기' 논란으로 번지면서 큰 파장으로 불러일으켰다. 슈퍼 슈퍼마켓(SSM) 규제를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치렀던 것도 결국 소규모ㆍ영세 자영업에 대한 법적ㆍ제도적 보호장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정부는 지난해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ㆍ품목 582개를 재정비해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식자재 납품업체인 동양식품의 강석호 대표는 "이전의 고유업종제와 달리 강제성이 없는데 대기업들이 자진해서 지키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권고나 공정거래 위반 여부 조사 같은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도 "SSM 논란 때문에 사업조정제도가 크게 부각됐지만 이미 40여년 전부터 있었던 제도"라며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고유영역을 명시해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이 10여건이나 계류돼 있다. 하지만 업종 선정 방식과 리스트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데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제 폐지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업 경쟁력 저하와 소비자의 권리 박탈 등의 반론이 나오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모델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서비스 수요는 증가하지만 고용 부진이 심각한 현실에서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 형태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
사회적 기업은 2003년 노동부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뒤 2006년 12월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본격화했다. 2007년 7월 50곳으로 시작해 지난해 10월에는 406곳까지 늘면서 1만여명의 노인과 저소득층, 장애인, 새터민 등 사회취약계층의 자활의지를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에코 팜므'(생태 여성)처럼 10여년 전 이주 여성노동자들의 소모임으로 시작해 이제는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은 곳도 생겨났다. 정부는 내년까지 1,000개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해 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1월 'SK 사회적 기업 사업단'을 출범시킨 것을 비롯, 삼성그룹과 포스코 등 대기업들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유도, 정부와의 정책 조율, 이윤추구 활동 보완 등의 역할을 수행할 중간지원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매년 50여개의 사회적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도 1년을 버티지 못하는 건 이와 무관치 않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이 가장 활성화돼 있는 영국의 경우 영파운데이션, 코인 스트리트 등 40여개 중간지원기관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면서 "우리도 민관 협의체를 통해 사회적 기업이 제대로 뿌리내리도록 지원하는 단체와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고용안정을 이뤄내는 것도 중요하다. 노사는 한발씩 양보해 반목과 대립에서 벗어나야 하고 정부는 양측의 의견을 조율해 갈등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친기업 이미지를 벗어나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한 마당에 정부가 대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해 노동시장의 유연성만을 강조한다면 노동계는 아무 것도 양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 문턱 높고… 質은 낮고… 여성취업 '이중고'
여성에게 돌아가는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질이 낮고 그나마 취업의 문턱도 상당히 높다.
통계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들의 연간 고용률은 58.7%로 전년대비 0.1%포인트 상승했다. 여성 취업자도 1년간 14만2,000명 늘었다. 그러나 여성 취업자 증가 인원의 57%인 8만1,000명이 주당 18시간 미만의 단기근로자였다. 고용은 늘었지만 절반 이상이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자리에 그치는 등 여성들의 고용불안은 심화했다고 볼 수 있다.
취업애로계층 조사에서도 여성은 남성과 차이를 보였다. 남성 취업애로계층은 2009년 114만8,000명에서 지난해 113만4,000명으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3%에서 59%로 줄었다. 반면 여성은 67만5,000명(전체의 37%)에서 78만7,000명(41%)으로 늘었다.
특히 전문대졸 이상 여성의 고학력 취업애로계층은 2010년 기준으로 23.7%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남성이 전년 대비 3.4% 증가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같은 기간 동안 전체 취업애로계층은 2009년 182만3,000명에서 지난해 192만1,000명으로 5.4% 증가했다.
취업 후에도 임신·출산 여성에 대한 해고 등 고용차별이 심각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평등의 전화 상담사례 분석결과 육아휴직, 임신ㆍ출산에 따른 불이익 및 해고 등 모성권 침해에 대한 상담은 2010년 957건으로 2009년(656건)에 비해 30% 이상 급증했다.
실제 여성의 일자리와 국민들의 생활형편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세계은행(IBRD)은 1인당 국민소득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인 국가의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53.4%(15~64세 기준)인데 비해, 2만 달러인 국가는 60.8%, 3만 달러인 국가는 68.3%, 그리고 4만 달러인 국가는 75.7%에 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3.9%(2009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1.3%에도 못 미치는 실정. 성평등지수 또한 세계경제포럼 성평등지수 조사에서 134개국 중 115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여성 일자리를 늘이기 위해 임신ㆍ출산 등 '모성권' 보호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민정 연구위원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학력 여성을 고용했을 때 출산 및 보육에 따른 추가적인 비용을 고려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며 "여성의 출산 후 경력 단절 현상을 완화하고 직장 복귀를 지원하도록 공공보육시설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사무처장은 "출산과 관련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권리 침해가 심각하다"며 "비정규직이 산전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인력정책연구실 김태홍 실장은 "최근 많이 늘어난 여성 일자리는 교육ㆍ복지ㆍ보건 등 공공부문이었다"며 정부의 재정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동현 기자 n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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