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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가장 사나운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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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가장 사나운 짐승

입력
2011.01.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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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 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온 세상 허옇게 눈 덮인 이 땅이다. 1950(庚寅ㆍ경인)년 6ㆍ25동란 때 200만 명의 사람이 죽었고, 육십갑자 한 바퀴 돌아 2010 경인년에 발생한 구제역으로 가축 250만 마리가 이미 살처분 된 이 땅이다.

'충남 홍성으로 문상을 갔었는데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드렸다나. 홍성이 우리나라 최고의 축산 단지라잖아. 구제역 방역 때문에, 마을 입구에 설치해 놓은 부의금 통에 봉투만 놓고 왔다는 걸.'

더운 피가 더운 피를 살처분 하는, 더운 피가 더운 피를 당장 먹이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운 피가 더운 피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살처분 하고 있어, 더 가슴 무거운 이 땅에 허옇게 눈이 내렸다. 축생들의 명복을 빌어주려고 자연이 소복을 한 것일까. 몸이 아닌 마음 비춰보기 전용 거울인 흰 눈 쌓인 산하. 구제역 때문에 관광객들 오지 않아 인삼장사 안 된다고 투덜거리던 부끄러운 내 마음. 저 흰 눈 오래 그리고 깊이 만나야 하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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