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이라곤 2004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유일하고, 코믹 연기는 해본 적 없다. 게다가 묵직한 느낌의 배우다. 그런 그가 코믹 퓨전 사극에 도전했다. ‘괜한 변신 시도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 하다. 그래도 ‘연기 본좌’라 불리는 그 아닌가.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쳤다. 밝고 경쾌한 영화를 무사히 마친 뒤에나 생길 법한 쾌활한 기운이 전해졌다.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정조의 비밀 지령에 따라 지방에서 공납비리의 음습한 배후를 수사하는 ‘명탐정’(김명민)의 활약상을 그린다. TV PD 출신으로 극장판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연출한 김석윤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밑그림 삼았지만 정서적 결이 많이 다르다. 서스펜스 넘치는 추리대신 웃음에 방점을 찍는다. 소소한 웃음거리들이 많으나 정조의 개혁정치, 천주교, 모반 등 이리저리 가지를 치는 이야기가 산만하다.
떨어지는 긴장감을 메워주는 건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다. 두툼한 카이젤 수염으로 얼굴을 장식한 김명민은 눈두덩을 실룩거리며 웃음기를 풀풀 풍긴다. 진지해 보이는 그의 외모와 달리 코믹 연기도 맞춤옷처럼 제법 어울린다.
김명민은 출연 이유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캐릭터의 매력”을 꼽았다. “밝고 유쾌한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큰 계기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제가 본 ‘007’이나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TV시리즈 ‘맥가이버’ 같은 영화라 느낌도 좋았어요. 캐릭터 무비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어요. 이번에 잘 돼서 시리즈로 계속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익숙하지 않은 연기라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익숙한 연기는 오히려 배우에게 큰 함정”이라고 말했다. “스릴러 연기를 많이 했는데 언제나 어렵고 힘들고 괴롭다. 코미디든 스릴러든 연기는 매번 힘들다”고도 했다. 첫 코미디라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데, 정작 그는 “코믹한 연기를 하려 하지 않았고 내가 웃겨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고 말했다. “밀명을 받은 신분을 속이려 우스꽝스레 행동하는 인물”로 설정하고 연기했다는 것. 그는 “밝은 역할을 해도 심각한 연기를 해도 내 모습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은 매번 똑같다”고도 밝혔다.
‘내 사랑 내 곁에’(2009)와 ‘파괴된 사나이’(2010)에 이은 잇따른 스크린 나들이다. 2008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이후 안방과는 거리를 둔 그의 행보에 대해 설익은 분석이 흘러 나온다. “흥행 등에서 별 재미를 못 봐 영화에 집착한다”는 것. 그는 “단지 마음에 드는 드라마가 없어서 그럴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명민 영화는 안 된다’는 세평에 대해서도 한 기자의 분석을 빌려 반박했다. “내 영화는 매번 손익분기점을 넘었는데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 흥행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을 바라시는 것인지…”라면서도 “더 열심히 해야죠.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말했다.
김명민은 ‘메소드 연기’(극중 인물과 자신을 최대한 동일시 하는 연기)로 유명한 배우.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 환자 역할을 위해 20㎏을 감량하고, ‘파괴된 사나이’에선 짧은 한 장면 촬영을 위해 사흘 밤을 새웠다. “지나친 자기 혹사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데 그는 “난 연기가 안 되니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는 도덕적 문제가 없는 선에서 어느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경험을 총동원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만 특별하지 않습니다. 배우를 띄엄띄엄 보시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배우라도 그 역할을 맡았으면 그렇게 연기 했을 겁니다.” ‘조선 명탐정’에선 신체를 극단적으로 몰아세우는 연기는 없었지만 그는 갈비뼈가 금 간 상태에서 한 달 넘게 촬영장을 지켰다.
그는 3월 다음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수 없다”는 차기작에서 그는 무척이나 많이 뛰게 될 듯하다. 그는 “뭐 죽도록 뛰는 수밖에요”라고 말했다. 그의 지독한 연기 열정에 벌써 또 불이 댕겨졌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