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전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주신다면 살아가면서 반드시 갚겠습니다. 상황이 너무 절박합니다…."
케냐 몸바사 항에서 30여년 간 선박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종규(58) 사장은 지난 18일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금미305호(241톤) 김대근(54) 선장과의 마지막 통화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김 사장은 25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선장과 피랍 이후 2~3일에 한번씩 통화했으나 현재 연락이 끊겼다"며 "한국 선원들의 건강 상태가 나쁜 만큼 정부가 빨리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특히 그는 "소말리아 해적 지도층은 인명 살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하부 행동대원들은 환각제를 복용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삼호주얼리호 구출 과정에서 생포한 해적과의 인질교환 문제에 대해 "해적들에게는 동료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잘라 말했다. 금미305호는 지난해 10월9일 케냐 해상에서 조업하다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당시 이 배에는 김 선장과 기관장 김용현(67)씨, 중국인 2명, 케냐인 39명 등 43명이 타고 있었다. 피랍 이후 선박은 소말리아 해적의 본거지인 하라데레 항에서 3㎞ 가량 떨어진 해상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김 사장에 따르면 당초 해적들은 몸값으로 600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60만 달러까지 낮췄다. 해적들은 "이 정도면 43명의 몸값치고는 싸다. 더는 안 된다"며 선을 그은 채 금미호를 모함으로 활용해 해적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선장은 김 사장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현재 풀려날 수 있는 길은 몸값을 주는 것뿐이다. 배를 맡기고 대출을 받든지 정부로부터 빌리든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회사나 정부에서 몸값을 먼저 제공해주면 나중에 갚을 테니 제발 풀려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김 선장과 김 기관장은 건강상태도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선장은 "배에 식량이 바닥 나 거의 개밥을 먹고 있고 채소 구경 해본 지 오래다. 기관장은 말라리아에 걸린 것 같다. 나도 당뇨 약을 먹고 있는데 언제 약이 떨어질지 모르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김 사장에게 전했다.
김 사장은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피랍 직후 정부 관계자가 G20정상회담 등을 이유로 언론 접촉을 피하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해적과 협상할 수 없고 지원도 어렵다며 태도를 바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또 "금미호와 관련해선 대책본부도 없고 상황도 나아지지 않아 선원들이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금미수산 대표였던 김 선장은 2005년 11월 아프리카 어장 개척을 위해 케냐로 떠났으나 선박 고장이 잇따르고 어장 개척에 실패하면서 2007년 회사가 부도났다. 금미305호도 1억5,000만원 가량 담보가 잡힌 상황이다. 김 선장은 선원 월급을 지급할 형편이 안돼 지난해부터 직접 배를 몰았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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