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TV에 입체 영상 성형광고가 나온다. (음향)…중략…이제 얼굴 성형만큼은 수술 없이…나노 성형 클리닉.
희수=참 세상 많이 좋아졌다.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예전엔 코 두 번에 턱 좀 깎고 이마에 보톡스를 수시로 맞아 줘야 했는데 요즘은 나노머신 주사 하나면 다 된다니….
선영=엄마,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있는 집 애들은 임신하기 전 유전자 디자인으로 완벽한 외모를 갖고 있는 걸. 걔네들은 살 안 찌지, 키도 크지, 머리 좋아 공부 잘하지. 아 부럽다.
희수=그래서 강남엔 원정 임신이 유행이라며? 그건 그렇고, 너 이번 기말 어떻게 됐어?
선영=엄마, 내가 언어 바이오칩 업그레이드 해달라고 했잖아. 우리 반 민영이는 새로 나온 전 과목 바이오칩을 미국 가서 뇌에 이식하고 왔대. 뭘 좀 해 줘야 공부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냐?
희수=저번에 업그레이드한 것도 아직 쓸 만하잖아. 칩 타령만 하지 말고 공부를 해.
30년쯤 후에 인기를 끌지도 모를 드라마 대본 중 일부를 상상해본 것이다. 여기 나오는 과학기술은 레이 커즈웨일(Ray Kurzweil)의 대중과학서 에서 발췌해 본 것이다. 뇌에 바이오칩을 이식할 수 있는 BCI(Brain Computer Interface)기술은 2009년도 에 미래를 바꿀 혁명적 기술로 소개되었다. 프로그램 가능한 MEMS 기술에 바탕을 둔 나노머신은 당뇨병 치료 등에 이미 시도되고 있다.
독과점적인 경제구조와 사교육 열풍이 지배하는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극장에 가면 생소한 광고가 나오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명품, 고품격, 럭셔리로 대변되는 성형 광고이다. 성형외과 광고가 영상매체에 이처럼 빨리 나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광고 내용도 아름다움 추구보다 외모 때문에 구직이 어려운 주인공이 성형 후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라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가 분명하다. 우석훈ㆍ박권일 공저 는 IMF 이후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몰락,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진행되면서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이고 이 때문에 안정된 직장인 공무원 시험 등에 3수ㆍ4수까지 해가며 매달리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옳다ㆍ그르다'를 중시하는 기성세대와 달리'스펙'과 '간지'를 판단기준으로 하는 20대를 우리나라의 유통자본은 럭셔리 마케팅과 쇼비니즘 마케팅의 대상으로 본다.
이런 마케팅의 예로 특정한 상품을 고품격ㆍ명품 등의 개념으로 포장하거나 태극기 등이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비정규직의 특성상 전문성이나 기술 숙련도보다는 토익이나 외모 등에 치중해 일회성으로 채용하려는 사용자와 승자독식제도에 길들여진 20대의 특성이 만나는 구조적 모순에 의해 '성형'이 새로운 마케팅 대상으로 부각되는 게 아닌가 싶다.
20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에만 있을지도 모를 인질경제를 조성한 사교육 열풍의 대상이 된 세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적ㆍ사회적 구조의 모순에 의해 사회현상으로 굳어져 가는 과정이고, 이들 20대가 기성세대가 될 30년 후의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이 또 다른 성형과 사교육을 위한 인질경제의 한 축이 되어 왜곡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은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될 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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