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이끌 유망주로 꼽혔던 '축구소년'의 방황기는 꽤 길었다.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소속으로 2006년 도요타컵 국제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윤빛가람(21ㆍ경남FC)은 2007년 국내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월드컵을 앞두고 에이스로 부각됐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도중 "K리그는 재미없어서 안 본다. 한국 선수 중 롤모델은 없다"는 K리그 비하 파문으로 한 순간에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이후 윤빛가람이라는 이름은 축구팬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졌다. 2009년 중앙대 입학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어둠의 터널'을 거닐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2009년 11월 당시 경남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이 2010 K리그 드래프트에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던지며 윤빛가람을 영입한 것.
2010년 윤빛가람은 다시 비상하는 날개를 단 듯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도약했고, 태극마크를 달며 A매치에 출전한 뒤 아시안게임에도 발탁되며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라이벌 지동원(전남)을 제치고 지난해 K리그 신인왕까지 거머쥔 윤빛가람은 아시안컵 8강에서 천금의 결승골을 터트리며 '히어로'로 떠올랐다.
윤빛가람은 구자철(제주)과 이용래(수원) 등에 밀리며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했지만 조커로 출전해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휘하며 조광래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윤빛가람은 23일(한국시간) 카타르 스포츠클럽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1 아시안컵 이란과의 8강전에서 연장 전반 15분 통쾌한 왼발 중거리포를 성공시켜 1-0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8월 나이지리아(2-1 승)와 A매치 데뷔전에서 골을 넣었던 그는 극적인 상황에서 다시 한번 킬러본능을 드러내며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슈퍼서브 윤빛가람이 한국을 살렸다"는 주요 언론들의 평가처럼 윤빛가람은 후반 36분 구자철을 대신해 투입된 뒤 경기 막판 다소 밀렸던 허리싸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연장 전반 4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날카로운 헤딩 패스를 찔러줬던 윤빛가람은 11분 뒤 이란 축구팬들의 심장을 멎게 만드는 골을 뽑아냈다. 오른 측면에서 가운데로 파고든 그는 아크 밖 오른쪽에서 왼발슈팅을 때려 상대의 왼쪽 골문을 갈랐다.
득점 후 '은인' 조광래 감독을 향해 달려가 안기는 장면은 윤빛가람의 '인생 역전 드라마'의 완결판을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윤빛가람은 "감독님이 많이 채찍질해서 힘들었지만 다 저를 위해서 그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슈팅하라는 주문처럼 기회가 되면 슈팅을 때리려고 했는데 그 순간이 찾아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은 25일 오후 10시25분 일본과 결승 진출을 놓고 격돌한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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