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동남아行 공장들 "U턴하고 싶어도 규제 때문에…" 주저
#.1 중국 텐진에 진출한 국내 스피커업체 A사는 국내 회귀를 한때 심각하게 검토했다. 1,000명 가까운 인력을 뽑아 공장을 운영했으나 생산 품질이 떨어져 오히려 과외 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A사에 따르면 국내 생산시 0.045%에 불과했던 불량률이 중국에서 생산하면서 0.45%까지 올라갔다. 아무래도 국내 숙련 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국내 복귀를 준비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비싼 토지비용, 물류비, 고임금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유연한 노동시장과 세제 지원 등 정부의 도움이 있으면 국내 회귀가 가능할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2 액세서리 업체인 B사도 마찬가지. 1999년에 중국 청도에 합작법인을 설립해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나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청산을 검토하고 있다. 이 업체는 국내의 공장 설립 건만 해결되면 다시 돌아올 생각이지만 여러가지 규제 때문에 고심 중이다.
해외 진출 기업 가운데 국내로 돌아오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소위 'U턴'이다. 특히 생산공장을 운영 중인 제조업체들이 국내 회귀를 검토하는 곳들이 많다. 해외 공장이 다시 돌아오면 국내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일자리 창출로 실업난 해소에 일조할 수 있어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국, 동남아 등지의 해외 공장들이 다시 돌아오려는 이유는 현지 생산의 이점이 급속하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과 각종 지원, 현지 시장 확보에 유리하다는 것이 해외 공장의 이점이었지만 과거와 달리 이점이 많이 줄어 들었다.
중국은 수년 사이 인건비가 크게 오르면서 더 이상 저임금 국가로 대접받기 힘든 실정이며, 동남아마저도 임금이 올라 노동 분규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국내보다 떨어지는 기술인력수준은 그대로 제품 불량으로 이어져 품질 및 기업 신뢰도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기업 경쟁력의 관건인 기술 유출이라는 불안 때문에 기술을 가르치기도 어렵다. 중국에서 보일러용 순환펌프를 생산하는 C사 관계자는 "생산품의 품질저하와 임금 상승이 현지 진출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대기업들도 일시적이지만 일부 해외 생산을 국내로 돌리기도 했다. LG전자의 경우 2009년에 중국 텐진에서 생산하던 에어컨 등 생활가전의 생산 일부를 경남 창원공장으로 가져왔다가 현재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LG전자는 위안화 환율 상승을 피하고 고가 제품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일부 생산시설의 국내 운영을 추진했다.
업계에서는 해외 공장이 국내로 돌아와 일자리 확보에 기여하려면 기업 환경의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유연한 노동정책이 필요하고, 저렴한 공장부지와 까다로운 입지 절차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해외 공장의 국내 회귀가 활성화되면 고용 증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러 효과가 있다"며 "정부에서 세제, 공장설립, 경영자문 등 3가지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상의는 고용 확대를 위해 국내 회귀 기업들에게 고용 및 교육훈련 보조금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또 다시 돌아오는 기업들이 시세보다 3분의 1 가량 저렴한 비용으로 부지를 임대할 수 있도록 전용 임대산업단지를 만드는 방안도 제시했다. 아울러 인력 및 부지 확보 등을 상담해 줄 경영자문도 필요하다.
일본, 대만 등은 고용 확대 차원에서 회귀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은 해외 공장의 자국 회귀를 돕기 위해 생산 시설의 면적을 제한하는 공장법을 2002년에, 공장재배치법을 2006년에 각각 폐지했다. 오히려 2007년에 기업입지 촉진법을 만들어 도로 등 기반시설과 금융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는 고용 확대로 이어졌다. 일본은 기업 회귀가 늘면서 2002년 5.4%였던 실업률이 2005년 4.4%까지 떨어졌다.
대만도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경제부 산하에 전담팀을 만들어 197개 기업의 자국 회귀를 도왔다. 대만 기업들은 값 싼 노동력을 보고 중국으로 진출했으나 대만 정부가 중국보다 비싼 임금을 상쇄할 수 있도록 토지 임대료를 낮추고 사업 우대 대출을 늘리자 앞다퉈 대만으로 돌아갔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사례에 비춰봤을 때 국내의 경우 전반적인 투자 환경을 개선해야 국내 기업들이 해외 공장을 다시 국내로 이전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공장들이 국내로 돌아오면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만큼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보다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해외 공장의 국내 회귀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로 다시 돌아오려는 공장들이 단순 가공품이 많아 저임금 노동력 외에 근본적인 청년 실업 해소에 도움이 안된다는 시각이다.
실제 일부 해외 기업들은 국내에 돌아올 경우 중국이나 베트남 등 현지 인력을 함께 데려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고부가가치 제품은 생산 시설의 일부를 국내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일반 범용제품과 사양산업이 국내로 다시 돌아오려는 경향이 강했다. 중소기업연구원측은 "저부가가치 산업의 경우 국내로 돌아와도 현지 노동력을 데려오거나 국내에서 저임금 노동력만 고용하려 들기 때문에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해외 공장의 국내 복귀와 함께 다양한 파생상품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통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작업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대기업 신사업 진출이 고용악화 부른다?
요즘 중소 내비게이션 업체인 A사의 사내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국내 대표 이동 통신 업체들이 내비게이션 사업에 속속 진출하면서 강력한 도전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막강한 자금력에 유통망까지 갖춘 이통사들과 벌여야 할 힘겨운 생존 경쟁은 고용 불안 우려로 연결되고 있다. A업체 직원은 "당장이야 큰 지장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장기적으로는 회사 사정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며 "사내 직원들은 벌써부터 자리 걱정을 하는 게 사실"이라고 푸념했다.
대기업들의 투자가 중소기업들의 경영난 악화와 더불어 고용 불안까지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의 투자가 신수종 사업이 아닌, 중소 기업들이 이미 진출한 분야로 번지면서 일자리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신성장 사업으로 지목한 분야는 중소기업들이 시장 개척을 끝낸 사업 분야가 많다.
특히 중소 기업들이 어렵게 구축한 틈새 시장을 주변에서 관망한 이후 막대한 인프라를 앞세워 주요 인력들을 흡수, 자연스럽게 진입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대기업들의 사업 영역 또한 정보기술(IT)을 포함해 전자와 유통, 제약 등으로 다양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관련 중소 기업들의 핵심 인력들을 무작위로 뽑아 해당 중소 업체가 심각한 경영 위기는 물론, 고용 불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 중소 B제약업체 연구팀장은 "최근 사무실을 그만 두고 떠나는 동료들이 많아서 알아보니, 바이오 사업 진출을 선언한 국내 한 대기업이 연봉 등 좋은 조건으로 연구원들을 직접 접촉하고 있었다"며 "남아 있는 동료들도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이처럼 중소 기업들이 진출한 분야와 인력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 만큼 위험 부담이 적고 안정적인 경영 전략을 펼칠 수 있어서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신사업 진출시, 기존 사업에 살을 붙이는 게 훨씬 유리하다"며"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한 사람도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다시 대기업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면 그것도 선순환 구조라고 생각하고, 이런 것에 대해 비난을 한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대기업 일자리는 60만개가 줄어든 반면 중소 기업의 일자리는 380만개가 늘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보다 훨씬 많은 인력을 채용하기 때문에 대기업으로 중소기업 영역이 흡수될 경우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먹거리를 손댈 게 아니라, 현재 대기업이 실시하고 있는 산학협력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키는 것이 중소기업 육성은 물론 일자리 창출도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박사는 "경쟁력을 갖춘 중소 기업과 손잡고 신시장을 파고 들면서 나오는 인프라 구축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자리 창출"이라며 "일부 학과로 국한된 산학협력을 전체 산업으로 넓혀 가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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