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뿌리가 뽑혔다면 다시 심으면 되지만 기둥이 사라져버린 지금은 어찌할 수가 없네요, 우리문학의 기둥이 사라졌습니다.”(황동규 시인)
23일 박완서 작가의 빈소가 차려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엔 문학계는 물론 정ㆍ관계 등 각계각층 인사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길을 잃은 아이들처럼, 황망히 떠난 여왕벌의 옛 자리 주변을 맴도는 벌처럼 이들의 발걸음은 조문 뒤에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고인을 우리문학의 기둥에 비유한 황동규 시인은 “내가 아는 말로는 이 슬픔을 표현할 수 없다”며 천정을 향해 올린 고개를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이해인 수녀는 “20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왔는데, 선하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던 분이다. 문인이자 인간으로서 자신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겸허함을 잃지 않았던 어른”이라고 회고했다.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나자로마을 운영위원을 하면서 가끔 만났는데 글을 통해 많은 깨우침을 주셨다”며 “개인적으로는 아프게 사셨던 분이라 더 마음이 아프다”고 흐느꼈다.
22일 부고를 접하자마자 빈소를 찾은 소설가 박범신씨는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 아침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문단으로서는 박경리 선생에 이어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셔서 훌륭한 지도를 잃어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은 내게 평생 작가로서 늘 귀감이 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강력한 현역 작가로 사셨던 분”이라고 덧붙였다.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고인의 생전 당부가 알려진 때문인지 빈소엔 대신 전국에서 답지한 화환이 유난히 많았다. 만발한 국화들이 환하게 웃는 영정 옆을 지켰고, 자리를 잡지 못한 화환은 꼬리표만 남긴 채 밖으로 내보내졌다.
추모 물결은 사이버 세상에도 이어졌다. 특히 먼 곳에서 비보를 접한 문인들은 블로그 트위터 등을 통해 고인을 기렸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박완서 선생님께서 이 세상 소풍을 끝내시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트위터에 남겼고, 팔로우어들은 이를 다시 실어 날랐다.
소설가 은희경씨는 여섯 차례에 걸쳐 트위터에 글을 올리며 고인을 애도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뵈올 수 있었으면…. 봄이 오면, 영화 보고 맛있는 거 사주신다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강한 분이 앓을 때 얼마나 두려울까 하면서도 오지 말란다고 안 갔던 게 후회되어 눈물 흐른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씨도 고인이 10년 전에 쓴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의 서두인 “올 겨울 추위는 유별나다. 눈도 많이 왔다”를 다시 보니 예사롭지 않다면서 “먼 길 편히 가소서”라고 썼다.
고인을 만난 적은 없으나 그의 작품을 흠모했던 팬들은 각 포털 사이트에 마련된 방명록에 한 줄씩 남겼다. “선생님으로 인해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아이디 김주형),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것이 행운이었습니다.”(김은주)
고인의 타계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팬은 발 빠르게 독서모임을 제안하고 나섰다. 아이디를 아예 ‘박완서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로 한 네티즌은 “고인을 기리는 분들과 함께 고인의 책을 한 권 정해 같이 읽고,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글을 올려 추모분위기를 조성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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