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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협, 전문성 갖추려면 '농민의 정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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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협, 전문성 갖추려면 '농민의 정서' 벗어나야

입력
2011.01.2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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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서'에 민감하다. 요즘같이 고물가 시대에 유례없이 파격적인 '통 큰 가격'조차도 '대기업의 행태'라는 정서 앞에선 고맙기는커녕 되레 눈총감이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공무원 신분이면 선뜻 좋은 차를 못 탄다. 자본주의사회의 한 시민이기에 앞서 '국민의 공복'이기 때문이다. 밋밋하던 운동경기가 '한ㆍ일전'이라는 정서가 개입되면 순식간에 불이 붙고, 법을 어긴 사람도 '국민 정서를 감안하면…'사면이 된다. 이처럼 정서는 위력적이다. 오죽하면 '헌법 위에 정서법'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정서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어떤 사물 또는 경우에 부딪쳐 일어나는 온갖 감정, 또는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이라고 나와 있다. 결국 감정과 기분이라는 뜻이다.

어떤 일을 정할 때 감정이나 기분을 고려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합리성과 객관성을 잃는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든 군중이든 정서라는 것은 늘 변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결정은 일관성마저 없다. 그래서 정서는 어떠한 사태를 두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논리를 규명'하는 과학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농협만큼은 아직도 정서의 위세에 눌려 살고 있는 듯 하다. '농민이 저 지경인데'라는 말만 갖다 붙이면 어떤 사안에도 정서법이 적용된다. 경영실적이 좋으면 '농민이 저 지경인데 농협은 돈만 번다'고 힐난한다. 골목 편의점에서도 취급하는 그 흔한 바나나마저도 농협하나로마트에서는 절대로 팔 수가 없다. '농민이 저 지경인데 농협이 수입농산물을 판다'고 호통 치기 때문이다. '농민이 저 지경인데 농협직원 봉급이 도대체 얼마냐'는 아우성은 축음기의 판처럼 돌아가는 단골메뉴다. 이처럼 농협은 농민 정서라는 말로 모든 것이 합리화된다.

물론 농협은 농민의 정서를 잘 읽어야 한다. 그러나 정서만 너무 살피다 보면 본연의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농협은 공공기관도, 관변단체도 아니다. 농업인의 출자로 만들어진 순수 민간조직이다. 그리고 치열한 시장구도 속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경영체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그 과실을 농업인 조합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주된 임무다.

그리고 이제는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도 국산 농산물과 섞이지 않도록 특별한 장치를 한 후, 어쩔 수 없는 일부 수입품목에 한해서는 취급을 고려해야 한다. 정서와 현실의 깊은 간극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다문화 가정과 체류 외국인만 해도 농협을 찾는 고객이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농민이 저 지경'이기 때문에 오히려 봉급을 더 많이 주고라도 그들을 위해 발 벗고 뛸 유능한 직원을 뽑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최근 농협은 사업구조 개편 작업이 한창이다. 신용사업(은행업무)과 경제사업(농산물판매업무)이 분리되어 각각 별도의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된다. 앞으로는 싫든 좋든 더욱 전문화된 사업체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고 '이윤극대화'에 매진해야 할 처지다. 농협도 더 이상 '농민의 정서'에 옥죄이고 매몰되어서는 시장경제의 건강한 일원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농협이 경영체로서 제 구실을 못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간다.

비단 농협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실체가 불명확한 '정서'에 지나치게 경도되어서는 곤란하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 논증'이 위력을 발휘할 때 우리 사회도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다.

최경식 농협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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