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이 대화 쪽으로 강하게 쏠리고 있다. 그러나 대북 정책 기조 선회의 중심에는 남측의 요구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 등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다는 정부의 원칙이 있다.
남북 대화 재개를 촉구한 미중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북한이 고위급 군사훈련 회담을 제의하고, 이에 한국 정부가 호응하는 모양새는 한반도 정세가 대화 재개 무드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단 남북 대화가 열리지만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그간 도발을 저지른 북한은 시간을 번 뒤 긴장완화 요구가 높아지면 미국 등 주변국과 먼저 접촉하면서 남측이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남쪽과의 대화를 통해야만 국면을 전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 정부에서는 북한이 대화 의제를 주도했지만 이번에는 우리 정부가 정한 의제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대화 재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북측에 각인시켰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향후 남측 전략에 대해 “북한이 우리측 요구를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6자회담 등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북한에 천안함 푹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사과를 포함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할 생각이다. 과거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이라는 요구를 ‘책임 있는 조치’로 요약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책임 있는 조치는 우리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답변 수위가 대화의 성패를 좌우할 듯하다. 전문가들은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는 북한이 비교적 직설적 화법으로 밝히겠지만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해온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고 점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서해상의 불미스러운 침몰 사건’ 등 애매한 표현을 동원해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남북 외교라인간 협상을 고려하고 있어 주목된다.
향후 남북대화는 한미공조, 미중간 조율 등의 변수로부터 적잖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남북 군사회담 재개 움직임을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한 대목은 되도록 남북대화가 순항했으면 하는 미측의 바람이 실려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만족할 만한 대화 성과가 없더라도 6자회담이 재개하기를 바라는 중국 등 주변국들의 움직임 등이 남북대화의 속도와 폭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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