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이 때를 노려라.”
21일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을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이름 붙인 이유다. 이날 해군 청해부대는 작전시점과 전투력, 기동성 등 모든 면에서 소말리아 해적을 압도했다.
어둠과 빛의 약점을 이용하라
구출작전이 펼쳐진 인도양에서는 해가 오전 6시 전후에 뜬다. 작전은 오전 4시58분께(한국시각 오전 9시58분) 시작됐다. 해뜨기 직전의 이 때는 가장 어둡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경계가 가장 취약한 시간이기도 하다. 군 관계자는 “구출작전은 처음부터 여명을 틈타 진행하기로 돼 있었다. 해적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벌건 대낮에 치고 들어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해가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밝다. 바닷물에 햇살이 반사돼 체감하는 밝기는 더하다. 뱃사람인 해적들이라도 눈이 부셔 순간적으로 경계가 흐트러지기 쉬운 순간이다. 따라서 여명 전후로 한두 시간이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적기다.
이날 삼호주얼리호에 승선한 해군 특수전여단(UDT) 요원 20여명은 모두 야간 투시용 안경을 착용하고 있어 시야의 방해가 전혀 없었다. 긴박한 순간에서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시기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막강 화력으로 3시간 만에 제압
피랍 후 6일간 해적의 틈을 노렸지만 막상 작전이 시작되자 적을 제압하는 데 3시간이면 충분했다. UDT 요원들이 고속단정 3척을 타고 접근하는 사이 최영함(4,500톤급)의 5인치 함포가 불을 뿜었고 링스헬기가 해적들에게 접근해 K-6기관총 수백 발을 발사했다. 밖에서 경계를 서던 해적 1명이 사살되자 다른 해적들은 놀라 선실 안으로 도망쳤고 UDT 요원들은 안전하게 배 위에 올랐다. 삼호주얼리호의 상공을 맴도는 링스헬기에서는 무장해제를 촉구하는 경고방송이 귀를 때렸다.
섬광탄 최루가스탄 소음탄 등 각종 첨단무기로 무장한 UDT 요원들에게 해적들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초 일부에서는 “최영함에 링스헬기가 한 대라도 더 있었더라면 사방에서 해적들의 혼을 쏙 빼면서 한결 수월하게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터져 나왔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UDT는 먼저 갑판의 가장 높은 부분인 배의 지휘부(선교)를 장악했다. 이어 격실 57개를 하나씩 장악하며 배 아래로 내려갔다. 상황이 정리된 격실에는 빨간색 스프레이로 X자 표시를 했다. UDT 요원은 전원이 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헬멧을 착용했는데 이를 통해 서울 용산의 국방부 청사 지하에 있는 군사지휘본부에서 실시간으로 현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해적들은 AK소총과 기관총, 대전차로켓포(RPG-7)를 쏘며 저항하기도 했지만 이미 전의가 꺾인 상황에서 총격전은 곧 잦아들었다. 작전 시작 3시간이 지나자 선원들은 모두 구출됐고 군 당국은 사실상 상황종료를 선언했다. 조타실에 억류돼 집중 감시를 받던 석해균 선장이 총격전 상황에서 미처 피하지 못해 해적이 쏜 총탄에 배를 맞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석 선장은 21명의 선원 중 유일한 부상자였다.
해적 잔당 4명이 퇴로가 없는 맨 아래쪽 복도로 내려가 끝까지 버텼지만 UDT 요원들은 아무런 부상없이 상황을 끝냈다.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한 완벽한 승리였다. 작전이 끝난 후 이성호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은 “작전은 신속하게 접근하고 적의 주의를 분산시켜 은밀하게 제압하면서 총 6단계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1차 구출 실패로 3명 부상
앞서 한 차례 위기도 있었다. 18일 오후 7시20분께(한국시각) 무장한 해적 7,8명이 소형보트를 타고 나와 삼호주얼리호(1만1,500톤급)에서 9㎞ 떨어진 곳을 지나던 몽골 선박(6만톤급)에 접근했다. 2차 피랍을 노린 것이다. 인질과 포획물을 늘려 도망가는 상황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계속 점하기 위해 해적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해적의 전력이 분산되자 UDT 요원 십여명을 태운 고속단청 두 척이 삼호주얼리호로 출동하고 링스헬기의 M60기관총은 보트에 타고 있는 해적들을 공격했다. 적의 헛점을 노린 양동작전이었다. 군 당국은 “돌발상황이었지만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작전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보트에 타고 있던 해적들은 전멸했지만 UDT 요원 3명도 해적의 총격에 부상을 입고 되돌아왔다. 구출작전 실패였다. 그러나 군 당국은 “선원들은 여전히 안전하고, 교전을 통해 해적의 전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실패가 아니다”며 의연하게 대처했다. 결과적으로 군의 예상은 적중했다.
연합해군전력도 제 몫을 했다. 미 5함대는 P-3C초계기와 해적들의 첩보를 제공하고 부상자를 헬기로 후송했다. 오만 함정은 구출작전에 함께 참여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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