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파동으로 온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다. 소, 돼지 200만 마리 이상이 매몰됐고 그에 따른 보상비 등으로 1조5,000억원 이상이 들어갔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가축을 밀어 넣으며 정신적 쇼크에 시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례 없는 구제역의 확산을 지켜보면서 한약사 이현주(43)씨는 이제 먹을 것과 관련한 근본적 논의를 해보자고 어렵게 입을 뗀다. 대한민국 유일의 채식주의 한약국을 운영하는 그는 지난해 1월 채식운동단체 고기없는월요일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축산 농민의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 채식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육식과 채식을 주제로 한 사회적 토론이 적었던 만큼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17일에는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천주교가 공동으로 '반생명적 축산정책의 종식을 기원하는 범종교인 긴급토론회'를 개최하고 육식산업과 육식문화를 점검했다.
_구제역의 확산을 막겠다며 소와 돼지를 땅에 묻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가.
"TV 화면 등을 통해 소, 돼지를 매몰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살겠다고 버둥대는 생명체를 억지로 묻는 것이 동물 학살처럼 보였다. 학자들은 인간이 느끼는 슬픔과 기쁨을 동물도 느낀다고 말한다. 소, 돼지가 땅에 묻히기 전에 눈물을 흘렸다는 증언도 있다."
_농민의 마음도 아플 텐데.
"나처럼 뉴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매몰 광경을 보는 사람도 안타까운데 애써 키운 가축을 땅에 묻는 농민은 심정이 어떻겠는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소, 돼지는 자식과 같다. 애정을 주고 정성을 다해 길렀다. 그렇게 성장한 가축은 주인에게 돈을 벌게 해준다. 소, 돼지는 자식이자 생계 수단이다. 축산 농민을 향한 사회적 위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_상황이 이 지경이 된 근본 원인으로 당신은 육식문화를 꼽는데.
"사람들이 먹는 것에 너무 욕심을 낸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생명을 먹을거리로 보는 경향이 생겼고 공장형태의 축산산업이 번성하게 됐다. 공장형 축산산업은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소, 돼지를 많이 집어넣는다. 좁은 곳에 갇힌 가축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면역성이 떨어져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된다."
_좀 더 설명해달라.
"공장형태의 축산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 소는 자연에서 30~40년을 사는데 사람들은 30개월이 되기 전에 도축한다. 주어진 명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질병 감염 예방을 위해 항생제를 투여하고 성장 촉진을 위해 성장호르몬을 주사한다. 그렇게 해서 우유는 자연상태보다 훨씬 더 많이 뽑아낸다. 소가 공산품이 된 것 같다."
_그런 축산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한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반자연적 공장식 사육 환경에서 키우는 한 전염병 확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백신으로 예방하면 면역력을 약물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약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대로 점점 강해질 것이다. 이번 구제역은 육식문화에 대한 경고다. 인류가 대안적 먹을거리에 고민할 시점이다."
_많은 사람이 육식을 즐긴다.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구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 육식을 나쁘다고 무조건 비난할 수 없고 육식하는 사람을 탓할 수도 없다. 육식에는 오랜 역사가 있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좋아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채식을 주장한다고 해서 육식을 비난할 권리는 없다고 본다."
_채식을 많이 하면 육식이 줄어 축산농민에게 타격이 되지 않을까.
"그것 때문에 나 역시 채식을 주장할 때 고민스럽다. 생계를 위해 축산을 하는 농민 앞에서, 그 누구도 육식 대신 채식을 하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농민들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육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유기농업 등으로 전환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번 파동으로 이미 많은 돈이 들었고 얼마나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사후 수습에 돈을 쓰지만 앞으로는 농민교육, 보조금 지불 등에 선제적으로 예산을 지출하면서 축산정책에 변화를 꾀해야 한다."
_채식주의자인 당신은 정말로 육식을 일절 하지 않는가.
"2004년부터 고기는 물론 생선, 우유, 달걀도 먹지 않았다. 채식을 시작한 뒤 고기가 먹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
_왜 채식을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생명의 가치와 지금의 고기 생산 방식이 일치하지 않는다.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가 먹는 고기는 대부분 반자연적 방식으로 생산된다. 또 한가지 이유는 지구환경 특히 기후변화에 미치는 나쁜 영향 때문이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교통수단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3.5%를 차지하는 반면 축산업에서는 18%가 나온다. 소가 트림할 때는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가 배출된다. 미국의 세계적인 민간 환경연구기관인 월드워치연구소에 따르면 온실가스의 51% 이상이 축산업에서 나온다. 이것이 기후변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 북반구는 강추위로, 남반구는 홍수로 고통을 받고 있다. 기후가 극단적으로 변한 것은 지구온난화 때문인데 축산업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70%가 파괴돼 동물사육지나 사료재배용 농경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가 채식을 하게 된 개인적 동기는 젊은 시절의 방황과 관련이 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87년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시작해 6월 항쟁, 6ㆍ29 선언, 노동자 대투쟁, 13대 대통령 선거 등 격랑의 사건이 이어졌고 그는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현실 참여와 삶의 방식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약학을 공부하고 한약사 시험에도 합격했지만 젊은 날의 갈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지인이 금강경을 쓰고 채식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그것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채식이 대안적 삶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2005년 고향 인천에 녹용, 우황, 사향, 웅담 등 동물성 약재를 일절 쓰지 않는 채식주의 한약국을 열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고기없는월요일에는 인천녹색운동,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여성환경연대, 미래숲 등 50여 단체가 동참하고 있다.
_채식을 한다며 갑자기 고기를 끊었을 때 아이가 당황하지 않았는가.
"채식을 시작할 때 하나뿐인 아들이 중 1, 한창 식욕이 왕성한 나이였다. 갑자기 채식식단을 차려주자 무척 힘들어했다. 나야 채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고기를 끊었지만, 거기에 공감하지 못한 아이는 고기를 내놓으라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더니 어느 날 달걀을 사와 혼자 프라이를 해먹었다. 일종의 시위였다. 나는 속으로는 눈물을 흘렸지만 겉으로는 모른 척했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의 갈등을 겪으면서 아이도 이제는 대체로 채식을 따르고 있다. 지금은 제사나 차롓날 할머니 집에서 고기를 먹으면 속이 좋지 않다고 한다."
_고기없는월요일,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월요일이든, 화요일이든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을 하자는 것이다. 이 운동은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미트프리먼데이(Meat Free Monday)를 주창한 뒤 세계로 퍼졌다. 물론 우리의 일상에서는 채식이 쉽지 않다. 채식주의자는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고 영양을 많이 흡수한다는 통념도 채식을 어렵게 한다. 고기를 먹고자 하는 현실적 욕구가 강한 만큼 콩고기, 쌀고기 등 대체 고기가 많이 나와야 한다. 대만에서는 콩과 밀로 새우, 어묵, 생선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_외국의 채식운동은 어떤가.
"벨기에의 헨트, 독일의 브레멘, 브라질의 상파울루,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등은 시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채식하기 운동을 하고 있다. 옥스퍼드, 하버드, 컬럼비아, UCLA 등 유명 대학에서도 같은 운동을 시작했다. 명사 가운데도 채식주의자가 많다. 브룩 쉴즈, 디카프리오, 브래드피트 같은 할리우드 스타와 칼 루이스, 무하마드 알리 등 운동선수가 채식을 한다. 아웅산 수지, 제인 구달 등도 채식주의자다. 스티브 잡스도 그렇고. 거슬러 올라가면 다빈치, 뉴턴, 아인슈타인, 에디슨, 다윈 등도 채식을 했다."
_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채식이 확산될 가능성은 있는가.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서울대와 세종대에 채식 식당이 생기고 광주시교육청은 올해부터 학교 급식을 주 1회 채식식단으로 내놓기로 하는 등 조금씩 확산 움직임이 있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사진=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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