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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위기는 면역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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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위기는 면역되지 않는다

입력
2011.01.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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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발생한 다음에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차선이다. 위기 후엔 성공과 실패 요인을 찾아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위기에 강한 조직이다.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10년 전인 2000년 3월 경기 파주시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낯선 가축전염병이었다. 1934년 이래 66년 동안 구제역 신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도 언론도 구제역을 잘 몰랐다. 구제역 확산 소식에 소비자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고, 소와 돼지고기 소비 기피로 이어졌다. 사람에게 전염되는지가 논란되기도 했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불안심리는 가중됐다.

과거 구제역 교훈 못 살려

정부도 경험 부족으로 허둥댔다. 초기 대응이 늦었다. 부처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다. 어느 부처는 소와 돼지고기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소비 진작 캠페인을 추진했다. 반면 국방부는 장병 식단에서 소와 돼지고기를 제외한다고 밝혔다가 급히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러나 신고 접수 열흘이 되지 않아 국무총리가 전면에 나서 신속히 전열을 정비해 적극 대처했다. 구제역 파동은 결국 한 달 만에 일단락됐다.

작년 11월 말 시작된 구제역이 50여일 째 계속되고 있다. 살처분 가축이 200만 마리를 넘어섰고, 매몰 보상비 등 재정 지출이 2조원을 넘을 거라는 보도다. 국내 축산업은 궤멸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피해 축산농가의 좌절은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이다. 온 국민이 깊은 우려 속에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10년 동안 학습한 지금은 훨씬 잘 대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언론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방역 시스템의 실패가 통제 불능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초동 단계 대응을 제대로 못한 점, 백신 접종을 결정한 뒤에도 소극적으로 대처해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많았다. 구제역이 발생한지 40일이 지나서야 대통령이 긴급 장관회의를 연 것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야당은 질타했다. 모두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구제역은 가축 질병관리 차원을 넘어 국가 위기관리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할 사안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우리가 간과했던 많은 부분들이 보인다. 그럴 리야 없다고 믿지만, 그 동안 매년 구제역이 반복되어 발생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위기에 둔감해 진 것은 아닌지, 또 대처에도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국가 위기관리 차원으로

10년 전에 비해 우리 국민과 언론은 많이 성숙했다. 구제역이 인체에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소와 돼지고기의 소비를 급격히 줄이지도 않고 있다. 언론도 기본적으로 냉정하게 사실보도를 하고 있다. 국민과 언론이 달라졌는데 정작 정부는 과거의 교훈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구제역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차단하고 시름에 젖은 축산농가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피해 복구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와 함께 2조원에 달하는 '수업료'를 낸 만큼, 철저한 개선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국가 위기관리 차원에서 이번 사태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단계별로 면밀히 조사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실효성 있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지금 다시 고쳐야 한다. 위기에는 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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