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겠다는 꿈은 접기로 했다. 멀리 시베리아까지 가지 않아도 지금 우리 산하도 가히 설국이어서 주말에 중앙선 열차를 타볼 생각이다. 중앙선 열차가 달려가는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강은 강대로, 숲은 숲대로 겨울의 진수를 듬뿍 느끼게 하는 절경일 것이다.
중앙선은 경주역에서 출발하여 영천, 안동, 영주, 제천, 원주, 양평을 지나 서울 청량리역에 닿는다. 1942년에 개통된 중앙선은 이름 그대로 한반도의 중앙 내륙을 달린다. 총 연장 386.6km를 느릿느릿 달린다. KTX 이후 열차가 속도가 되고부터 잃어버린 멋과 맛이 중앙선에는 남아 있다.
빠른 속도에 정숙을 요구하는 KTX가 지극히 기계적이라면 중앙선 열차에는 사람냄새가 난다. 겨울이면 역마다 북쪽의 설산을 오르기 위한 형형색색의 등산객들이 자신의 키보다 높은 배낭을 메고 열차에 오르고, 누군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 마침내 합창이 되고 마는 열정을 아직 중앙선 열차에서는 만날 수 있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마음도 쉽게 하나가 된다. 삶은 달걀을 옆자리의 사람에게 서슴없이 권하고 눈에만 담아 놓을 수 없는 풍경을 만날 때는 함께 환호하는 것이다. 눈은 내리고, 끝없이 내리고 이용악의 시처럼 '잉크병이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나는 깨어 사무치도록 중앙선 열차를 타고 싶은 것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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