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UCSB(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대) 생물학과 교수인 가렛 하딘이 1968년 12월 지에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짧은 논문을 올렸다. 이후 학계는 인문ㆍ자연계 가릴 것 없이 이 화두를 들고 수십 년간 고민하고 씨름해왔다. "목초지, 지하자원, 공기, 바다ㆍ호수의 물고기처럼 공동체 모두가 사용하는 자원을 사적 이익과 이기심이 지배하는 시장에 맡기면 저마다 자원을 남용해 공멸하게 된다"는 당연한 명제를 놓고 왜 그랬을까. 현실은 경제학적 추론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 목축이 주업인 마을에 소가 마음껏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목초 공유지가 있다고 하자. 농가 입장에선 사료 비용이 없으니 한 마리라도 소를 더 키우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풀의 성장 속도가 제한된 상황에서 마을 농가 전체가 이기적 동기에 따라 행동한다면 목초지는 곧 황폐화하고, 방목하던 소들도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하딘이 염려한 비극이고,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공짜 점심은 없다"고 외치는 논거다. 영화 에서 스미스 요원이 비웃던 인간 세계의 잔혹한 이기심과 무분별한 어리석음이라면 이런 결과를 면할 길 없다.
■ 그렇다면 진작에 멸망했어야 할 지구 생태계가 어떻게 지금껏 유지돼왔을까. 답은 경제학계의 변방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인디애나대의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에게서 나왔고 노벨상위원회는 2009년 "경제학도 시장 이론의 범주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그녀에게 경제학상의 명예를 안겼다. 이론의 요지는 "시장 메카니즘이나 정부 개입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자치적 규율과 절제로 공유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암울하게 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다(최정규 저 4장)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민주당의 무상복지 공약에 맞서는 전사로 나선 모양이다. 연일 "오늘 부모 세대가 공짜로 먹은 점심값은 나중에 자녀들이 갚아야 한다. 무책임한 포퓰리즘 주장을 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낡고 무딘 무기 중엔 '공유지의 비극'도 있다. 학계에서도 약효가 떨어진 우파 포퓰리즘으로 국민들을 겁박하는 꼴이다. 자신도 민망했던지 조만간 대응논리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꾸린다고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수시로 '영혼을 파는'집단이라면, 차기 권력에 잽싸게 붙을 여지는 남겨놔야 할 텐데.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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